차량의 좌석에 앉으면 안전벨트 매는 것이 습관화되어 있습니까?

저는 일단 운전석에 앉으면 벨트부터 매는 것이 몸에 익었습니다. 아마 운전면허 딴다고 운전학원에 가서 1톤 트럭에 처음 올라 탔을 때 옆 자리의 강사 첫 마디가 "벨트 매세요."였던 기억이 너무나 강렬해서 벨트부터 매야한다는 강박관념 비슷하게 자리 잡은 것 같습니다.


안전벨트 공익광고


그런데 다른 경우를 살펴 보면 벨트 매는 습관이 다 제각각입니다.
저처럼 앉으면 바로 벨트 매는 타입,
일단 시동부터 걸고 벨트 매는 타입,
시동걸고 출발부터 하고 상황 보아서 벨트 매는 타입,
간혹 생각날 때 한번씩 벨트 매는 타입,
안전벨트? 미착용 범칙금 까짓 거 내고 만다는 타입 등등 각양각색이라고 할 수 있죠.

그래도 요즘은 안전벨트를 매야 한다는 사실은 모두 수긍하는 편이지요. 그래도 계몽이 많이 되기는 하였지만, 마지막처럼 벨트를 고의로 안 매는 경우가 없다고도 할 수 없는 게 현실입니다.

안전벨트 착용 이젠 입으로 백날 떠들어 보아야 효과가 미미하죠. 그래서 공익광고 한 편 소개해 드립니다. 정말 잘 만들어진 광고입니다. 별로 길지도 않으니 꼭 한번 끝까지 보실 것을 강력 추천합니다. 후회 없으실 겁니다.

어떻습니까? 여러분의 목숨은 당신 혼자만의 것이 아닙니다.
안전벨트. 이젠 매세요!!!

안전벨트 착용



  * 이 포스트는 blogkorea [블코채널 : 이런 저런, 라이프 스토리!] 에 링크 되어있습니다.   

추천 부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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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돌아다니다가 우연히 발견한 사진들입니다. 물방울 속에 담겨 있는 풍경이 너무 이뻐서 소개합니다.
사는 게 바쁘다는 핑계로 주변에 이런 멋진 그림들이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다는 사실이 한탄스럽기까지 합니다. 제가 직접 찍은 사진들은 아니지만, 저랑 같은 느낌을 받는 분이 있으면 함께 공유하고픈 생각에 올려 봅니다.

이 글을 보시는 분들은 아침 이슬이나 빗방울을 보며 사색에 잠겨보신 적이 언제였나요?


아침 이슬

사진 출처



아침 이슬

사진 출처



아침 이슬

사진 출처



아침 이슬

사진 출처



아침 이슬

사진 출처


아침 이슬

사진 출처



아침 이슬

사진 출처



아침 이슬

사진 출처



아침 이슬

사진 출처


- via Environmental Graffiti


잊고 있거나, 잃어버리고 있는 아름다운 것이 너무 많은 것 같습니다.
비가 와서 그런지 이런 그저 먹는 포스팅도 남깁니다. :P
단, 발행은 하지 않겠습니다. ^^;


좋은 글은 읽으면 읽을수록 그 파급 효과는 배가되는 거 맞죠?

우리가 사는 세상이 갈수록 삭막해져만 가고, 서로 간의 정을 느끼기 어렵다고 합니다. 신문 사회면을 보아도 섬뜩하고 무서운 기사들로 넘쳐 납니다. 9시 뉴스를 보아도 10개의 기사를 낸다 치면 8~9개가 마음을 무겁게 하는 소식인 것 같습니다.
점점 더 험해져 가는 세상살이를 보며 부모님을 모시는 자식으로서, 한 여인의 버팀목이 되는 지아비로서, 그리고 자식을 키우는 부모로서 이런저런 고민이 많은 시기인 것 같습니다.

얼마 전에 알게 된 사이트 중에 행복닷컴이란 곳이 있습니다. 좋은 글, 감명을 주는 글을 찾아다니다 알게 된 사이트입니다. 이곳의 운영자 행복지기라는 분은 참 대단한 분 같습니다. 먹고 살기도 바쁜 세상에 이런 사이트를 만들 생각을 하고, 그걸 실천으로 옮겼다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니었을 텐데 말입니다. 행복닷컴에 있는 글들 하나하나가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또 한 번 우리가 사는 세상이 정말 메마르기만 한 것은 아니구나 하고 느끼게 해주는 곳입니다. 시간 되시면 한 번씩 방문해 보시기를 추천합니다.

클릭하시면 행복닷컴으로 이동합니다.  행복닷컴

아래는 행복닷컴에서 제작, 배포하는 플래시 영상입니다. 행복지기님이 널리 널리 퍼뜨려 마음의 순화를 얻고, 보다 따뜻한 세상이 되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고 하니 다른 분들도 마음에 느껴지는 게 있으면 함께 해 보는 건 어떨까요?


라면에 계란 하나



세상을 아름답고 행복한 곳으로 만드는 것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다만, 그걸 어떤 식으로 이해하고 깨닫느냐가 중요하겠지요.

항상 행복한 나날들 되세요~!


☞ 추가 사항:
혹여 플래시 재생이 되지 않으면 아래 링크를 클릭하세요.

[감동플래쉬] 라면에 계란 하나. - 클릭하시면 새창으로 열립니다^^


할머니에 대한 기억은 하나씩 가지고 계실 것으로 생각합니다. 저 역시 어머니 말씀으로는 어린 시절 외할머니에게서 거의 자라다시피 했다고 하더군요. 어렴풋이 외할머니께서 자장가 불러 주고 하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은 친할머니, 외할머니 두 분 다 돌아가셨지만 할머니라는 단어를 접할 때마다 아련한 추억과 함께 아쉬움, 후회가 밀려 옵니다. 진작 철이 들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말입니다.

할머니에 대한 좋은 글이 있어 모셔 옵니다.


나를 철들게 한 할머니

교통사고로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마저 아버지가 남기신 빚을 갚기 위해
서울로 떠나신 후, 다섯 살이던 저와 세 살이던 남동생은 시골에 계시던
할머니 손에 맡겨졌습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장 먼저 기억나는 어린 시절이 있겠지요.

제가 기억할 수 있는 가장 어린 시절은 할머니 손에 맡겨지고 1년이 지난,
여섯 살의 봄입니다. 불행히도 제가 기억하고 있는 가장 어린 시절은,
지금까지도 제 가슴 속에 아픈 추억으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날, 도시 생활을 하고 있던 친척들이
저와 제 동생 문제로 할머니 댁을 찾았습니다.
너무 어렸기 때문에 정확히 기억할 수는 없지만,
할머니와 친척들 간에 언성을 높이는 이야기가 오갔습니다.
할머니는 계속해서 안 된다는 말씀만 반복하셨고,
친척들은 사는 게 힘들어서 도와 줄 수 없다는 말만 거듭 했습니다.

큰아버지는 저와 제 동생에게 새 옷을 입혀 주고, 새 신을 신겨 주며,
좋은 곳에 가게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울먹이시던 할머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큰아버지는 저희 남매 손을 이끌고
문밖을 나섰습니다. 친척들 누구하나 따라 나오는 사람이 없었지만,
할머니는 다르셨습니다.
버선발로 뛰쳐나와 저희 남매를 끌어안고 우셨습니다.

“안 된다. 절대 못 보낸다. 고아원에도, 아들 없는 집에도, 나는 못 보낸다.
죽은 내 아들 불쌍해서 이것들 못 보낸다.
니들 헌티 10원 한 푼 도와 달라구 안 헐라니까 보내지 마라.
그냥 내가 키우게 놔둬라.” 할머니는 그렇게 말씀하시며 목 놓아 우셨습니다.

그날 할머니가 아니었다면 지금의 저도, 제 남동생도 없었겠지요.
할머니의 눈물이 지금의 저희 남매를 있게 해 준 것입니다.
고아원에 가지 않은 것만으로도, 아들 없는 집에 보내지지 않은 것만으로도,
저희 남매는 할머니께 평생 갚아도 다 갚지 못할 은혜를 입은 것인데
그게 얼마나 큰 은혜였는지 그때는 몰랐습니다.

사진 출처: Flickr aronki


철이 들 무렵이 되어서야 그것을 알았습니다.

할머니는 친척들께 약속하신 대로 10원 한 푼 받지 않고
저희 남매를 기르셨습니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남의 집으로 일을 다니시며,
받아오신 품삯으로 생활을 꾸려가셨습니다.
할머니가 저희 남매를 키우기 위해 얼마나 고생을 하셔야 했는지,
스스로 얼마나 억척스러워지셔야 했는지,
그때는 너무 어려서 몰랐습니다.

그저 배부르게 먹지 못하는 것이 불만이었고,
새 옷 한 벌 없이 남의 옷만 얻어 입는 것이 불만이었고,
다른 아이들처럼 학용품을 넉넉하게 쓰지 못하는 것이 불만이었고,
마음 놓고 과자 한번 사 먹을 수 없는 것이 불만이었고,
소풍에 돈 한 푼 가져갈 수 없는 것이 불만이었고,
운동회 때 할머니랑 함께 달리는 것이 불만이었고,
할머니 밑에서 자란다는 이유만으로 동네에서나 학교에서나
불쌍한 아이 취급받는 것이 불만이었습니다.

배부르게 먹이지 못하는 할머니 마음이 얼마나 아팠을지,
새 옷 한 벌 사주지 못하는 할머니 마음이 얼마나 아렸을지,
남의 집으로 옷을 얻으러 다니며 할머니가 얼마나 고개를 숙이셨을지,
넉넉하게 학용품을 사 주지 못하는 할머니 마음이 어땠을지,
소풍간다고 김밥 한번 싸주지 못하고
용돈 한 푼 주지 못하는 그 마음이 어땠을지,
다른 아이들은 운동회 때 엄마와 함께 하는 것을
나이 드신 당신 몸으로 해 주시느라 얼마나 진땀을 빼셨을지,
어디서나 애비 에미 없다고 손가락질 받는 손자들을 보며
얼마나 가슴을 쓸어 내리셨을지,
그때는 철이 없어서 몰랐습니다.

그저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조금이라도 더 불쌍하게 보여서
뭐 하나 얻으려고 애쓰는 할머니의 모습이 싫고 창피할 뿐이었습니다.
할머니는 저희 남매를 위해 자신을 포기하고 사셨습니다.
당신의 체면이나 얼굴을 모두 버리시고,
오로지 저희 남매를 위해 사셨습니다.
앉았다 하면 신세 한탄이 먼저 나오고,
불쌍한 손자들 얘기를 풀어 놓으며 눈물을 훔치시기 바빴지만,
할머니가 그렇게 사셨기 때문에 과자 한 봉지라도 얻어먹을 수 있었고,
이발소에서 공짜로 머리를 자를 수도 있었고,
새 연필 한 자루라도 얻어 쓸 수 있었습니다.

사진 출처: Flickr의 Denis Collette...!!!


할머니는 그렇게 철없는 남매를 기르시면서
한없는 사랑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누구보다 억척스럽고 강하셨지만,
또 누구보다 여리고 사랑이 넘치는 분이셨습니다.
남의 집으로 일을 가시는 날에는 새참으로 나온 빵을 드시지 않고
집으로 가져오시는 분이셨고,
1주일에 한번 장으로 나물을 팔러 가시는 날에는
순대를 한 봉지씩 사다주시는 분이셨습니다.

동생과 제가 싸우면 뒤란에 있던 탱자나무 가지로 심하게 종아리를 치셨지만,
붉은 줄이 그어진 종아리에 약을 발라주시며 금세 눈물을 훔치시는 분이셨고,
맛있는 과자를 마음껏 못 사줘 미안하다며 문주를 부쳐주시고,
개떡을 쪄주시고, 가마솥 누룽지에 설탕을 발라주시는 분이셨고,
비가 아주 많이 오는 날에는 우산 대신 고추밭 씌우는 비닐로
온 몸을 둘러주시고 빨래집게로 여기저기 집어주시며,
학교에 가서 다른 아이들이 너는 우산도 없느냐고 놀리거든,
“우리 할머니가 이렇게 돌돌 싸매면 비가 한 방울도 못 들어와서
옷이 안 젖는다더라.
너도 니네 엄마한테 나처럼 해달라고 해봐.”
그렇게 말하라고 시키시던 분이셨습니다.

비록 가난해서 봄이면 나물을 뜯어다 장에 내 팔고,
여름이면 고기를 잡아다 어죽 집에 팔고,
가을이면 도토리를 따다 묵 집에 팔고,
겨울에는 손에 마늘 독이 베이도록 마늘을 까서 돈을 벌어야 했지만,
그래도 지금 생각해보면 할머니와 함께 했던 유년의 그 시간들이
스물아홉 제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습니다.

그때는 그게 행복이라는 걸 몰라서 할머니 가슴을 많이도 아프게 했지요.
저는 가난이 싫었습니다. 억척스러운 할머니가 싫었습니다.
그래서 반항적이었고,
사춘기에 접어들면서는 제 욕구를 채워주지 못하고 제 마음을 조금도
이해해 주지 않는 할머니가 미워서 버릇없이 굴기도 했습니다.

사진 출처: Flickr의 xdera - Luca Deravignone


할머니가 부끄럽다는 생각은 했으면서도,
고생하시는 할머니가 불쌍하거나 안쓰럽다고
생각해 본적은 한번도 없었습니다.
할머니를 생각하며 몰래 눈물을 훔쳐본 적도 없었습니다.

그때는 정말 몰랐습니다.
할머니가 제 욕구를 충족시켜주고 싶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사춘기의 저를 이해 못했던 것이 아니라,
현실이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우리 남매가 아니었다면
혼자 편하게 사셨을 할머니가 손자들을 떠맡은 죄로
불쌍하게 사실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철이 들 무렵에야 알았습니다.

저와 남동생은 시골에서 중학교를 마치고 각각 천안에 있는
상고와 예산에 있는 인문고등학교에 진학해 자취 생활을 했습니다.
저희 남매는 주말마다 할머니가 계시는 집으로 내려갔는데,
그때마다 냉장고를 열어보면 그 안에 빵과 우유가 가득했습니다.

남의 집으로 일을 다니셨던 할머니가 새참으로 나온 빵과 우유를 드시지 않고
집으로 가져오셔서 냉장고에 넣어놓으신 거였습니다.
남들 다 새참 먹을 때 같이 드시지 왜 이걸 냉장고에 넣어 놓으셨냐고,
유통기한 다 지나서 먹지도 못하는 데 왜 그러셨냐고 화를 내면,
“니덜이 목구멍에 걸려서 넘어가야 말이지.
니덜 오먼 줄라고 냉장고에다 느 놨는디, 날짜 지나서 못 먹으먼 워쩐다냐.”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한번도 할머니를 가엾다고, 안쓰럽다고 생각하지 못했던 제가,
냉장고에 가득하던 빵과 우유를 내다 버리면서 하염없이 눈물을 쏟았습니다.

가슴 저 밑바닥에서 뜨거운 것이 올라오는데,
할머니가 그렇게 불쌍해 보일 수가 없었습니다.
아마도 그때가 제가 철이 들 무렵이었던 것 같습니다.

사진 출처: Flickr의 capn madd matt


한번은 자취하는 제게 김치와 쌀을 갖다 주시겠다고 올라오신 할머니를
만나기 위해 터미널에 나간 적이 있었습니다.
한참을 두리번거린 후에 찾아낸 할머니는 반갑게 제 손을 잡으시며
“아침 7시 차 타구 나왔더만, 10시두 안 돼 도착허더라.
한 3시간은 이러구 서 있은 모양이여.
기다리다 배고파서 나 먼저 짜장면 한 그릇 먹었다. 이?”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또다시 가슴 한 구석이 아렸고,

그러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할머니께 화를 냈습니다.
“그러게 내가 아침 드시고 천천히 출발하시라고 안 했어!
할머니 때문에 속상해 죽겄네.”
할머니는 화가 난 손녀딸의 눈치를 살피시며 들고 오신 가방 지퍼를 여셨습니다.
할머니가 들고 오신 큰 가방 속에는 김치 통 두 개가 들어있었고,
가방 안은 김치 통에서 흘러나온 빨간 김치 국물로 한 가득이었습니다.
“내가 할머니 때문에 미치겠네. 김치만 비닐봉지에 꼭 싸서 가져오셔야지,
가방에다 김치 통을 통째로 넣어오면 국물이 안 넘친데?”
할머니는 금세 얼굴이 붉어지셨습니다.
“이를 워쩌까. 국물이 다 새서 못 들고 가겄다.
내가 언능 수퍼 가서 봉다리 얻어올팅께 지달려라, 이?”
할머니는 터미널 안 슈퍼에서 검은 비닐봉지를 얻어 오셨습니다.

그리고 김치 통을 봉지 안에 넣어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가시네덜이 지덜언 짐치 안 먹구 사나,
노인네가 버스 안에서 김치 냄새 좀 풍겼기로서니,
그렇기 코를 막구 무안을 줘?”
할머니의 그 말을 듣는 순간, 차 안에서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받으며
안절부절 하셨을 할머니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가슴이 미어졌습니다. 할머니는 김치 전해 줬으니 그만 가 봐야겠다시며
들고 오신 가방 안쪽 작은 지퍼를 열고
꼬깃꼬깃 접은 1만 원 짜리 두 장을 제 손에 쥐어 주셨습니다.
할머니께서 건네주신 1만 원 짜리는 빨갛게 물들어서
김치 국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할머니 앞에서 울고 싶지 않았던 저는 얼른 매표소로 뛰어가
할머니 차표를 끊어다 드리고 할머니를 배웅해 드렸습니다.

그날 자취방으로 돌아오는 시내버스 안에서
얼마나 소리 내어 울었는지 모릅니다.

할머니가 젖은 가방에서 꺼내 주셨던,
빨간 김치 국물이 뚝뚝 떨어지던 1만 원 짜리 두 장을 손에 꼭 쥐고,
사람들이 가득한 버스 안에서 그렇게 한참을 울었습니다.

사진 출처: Flickr의 [xinita] passed trigonometry!


고등학교 졸업 후 무역회사에 취직한 저는 돈을 벌게 되었고,
이제 할머니를 호강시켜 드릴 수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벅찼습니다.
할머니가 아프시다고 하면 약재시장에 가서
좋다는 약재를 사다 보내 드리고, 할머니 생신이 다가오면
동네 할머니들과 식사라도 하시라고 용돈도 보내 드리고,
주말에 시골에 내려가면 할머니와 장으로 구경도 나가고,
명절에는 할머니를 모시고 레스토랑에 가서 돈가스도 사 드렸습니다.

처음 할머니를 모시고 레스토랑에 가서 돈가스를 먹던 날, 할머니는
돈가스 한 접시에 음료로 나온 사이다 한잔까지 쭉 비우신 뒤 말씀하셨습니다.
“양두 얼마 안 되는 것이 참말로 맛나다, 이?
이런 것이먼 몇 접시라두 먹겄다.”
저는 할머니의 그 말에 또 다시 눈물이 났습니다.
그까짓 돈가스가 얼마나 한다고 이제서야 사드리게 됐을까.
가슴이 아파서 고개도 들지 못하고 제가 먹던 접시를
할머니 앞에 내어 드렸습니다.

그날 하얗게 서리 내린 할머니 머리를 내려다보면서
마음속으로 다짐했습니다.

앞으로는 맛있는 것은 무엇이든 사 드리리라.
남들 먹는 거, 맛있다고 하는 거, 한번씩은 다 맛보여 드리리라.
좋은 옷도 입혀 드리고 멋진 구경도 맘껏 시켜 드리리라.

언젠가 할머니는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손녀딸 좋은 사람 만나 시집가고,
이쁜 새끼 낳아 사는 거 보고 죽으먼 내가 소원이 없을 것인디.”
저는 할머니의 소원대로 좋은 사람을 만나 결혼을 했고,
다음 달이면 돌을 맞는 예쁜 딸아이도 낳았습니다.

할머니는 올해로 팔순이 되셨습니다.
그렇게 억척스럽게 우리 남매를 길러 내셨던 할머니는
이제 정말 할머니가 되셨습니다.

허리도 구부러지셨고, 검은머리가 한 가닥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너무 늙으셔서 예전처럼 맛있는 문주를 부쳐 주시지도 못하고,
개떡을 쪄 주지도 못하고, 누룽지에 설탕을 뿌려 주시지도 못합니다.
뜨거운 밥에 올려 먹던 할머니의 얼짠지가 그렇게 맛있었는데,
이제는 그때 그 맛을 내시지도 못합니다.
같이 봄나물을 뜯으러 다닐 수도, 도토리를 따러 다닐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가슴이 아프고 할머니를 생각하면 자꾸만 눈물이 납니다.
할머니 하면, 낡고 닳아 헤진 고무신 한 짝이 떠오릅니다.
헌 고무신처럼 평생을 마음껏 가지지 못하고
지지리 고생만 하시며 살아오신 할머니,

이제 할머니가 제 곁에 함께하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느낍니다.
언제일지 모를 그날까지 제가 할머니의 은혜를 다 갚을 수 있을까요?
꽃으로 태어났으나 들풀로 사셔야 했던 그분의 인생,
이제부터라도 화사한 꽃으로 사셨으면 좋겠습니다.

가난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조금 불편한 것일 뿐이라는 걸
가르쳐 주신 할머니!
이제 저는 할머니의 사랑과 고생을 모두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철이 들었습니다.
눈부시게 화창한 봄날, 우리 할머니 손을 잡고 꽃길을 걸어 보고 싶습니다.
오래 전 눈물나게 아름다웠던 유년의 풍경들을 떠올리며 웃어 보고 싶습니다.

사진 출처: Flickr의 colorblindPICASO


올 봄에도 꽃은 피겠지요?
그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편지를 마치겠습니다.


- 출처: MBC 라디오 여성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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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감동에 북받쳐 눈시울이 붉어지게 했던 글인데 우연하게 다시 보게 되어 잊어버리기 전에 저장합니다. 이미 보신 분들도 많을 테고, 아직 못 보신 분들도 계시겠지만, 사랑의 힘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다시 한번 새기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더구나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고 하니 감동이 배가 되는 것 같습니다.
차라도 한잔하시면서 천천히 감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중환자실에서의 작별인사


지금으로부터 5년 전.
내가 진주에서 인턴으로 근무할 때의 이야기이다.


공사장에서 추락사고로 뇌를 다친
26살의 한 젊은이가 새벽에 응급실로 실려왔다
이미 그의 얼굴과 머리는 심하게 손상되어
원래 모습을 전혀 알아볼 수 없었고
의식은 완전히 잃은 후였다

서둘러 최대한의 응급조치를 했으나
살 가망은 거의 없을 것 같았다.

이미 식물인간이 된 상태나 마찬가지인 그가
호흡기를 달고 중환자실에 누워있는 그날 아침,
나는 착잡한 심정으로 그를 지켜보았다.

심전도를 체크하는 기계 쪽으로 시선을 돌리는 순간
나의 가슴은 무겁게 가라앉았다.

규칙적이고도 정상적인 심장 박동을 나타내던
ECG(심전도) 곡선이
갑자기 웨이브 파동(V-tach)으로 바뀌었던 것이다.

힘차고 반복적인 정상적인 인간의 심장박동에서
점차 약해지며 그 힘을 잃어가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었으며
그것은 곧 죽음이 가까이 옴을 의미했다.

보통 이러한 ECG 곡선이 나타난 이후
10분 이상을 살아있는 이를 나는 본 적이 없었다.

그의 운명이 목전에 다가왔음을 느낀 나는
중환자실을 나와서 기다리고 있는 가족들에게
환자가 운명할 때가 되었으니 와서 임종을
지켜보라고 일렀다.

이미 가족들은 환자에 대한 어떠한 조치
(응급 심폐소생술)도 포기한 채
그의 죽음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었던 상황이었다.

젊은이의 부모님과 일가친척인 듯한
몇몇 사람들이 슬피 울며
이미 시체나 다름없이 누워있는 그에게
마지막 작별을 고하는 모습을 보며
나는 무거운 마음으로 중환자실을 나왔다.

간호사에게는 심전도 파동이 멈추면
곧바로 영안실로 옮기라고 일러두었다.

다른 환자를 보고 잠시 후 다시 그 중환자실을 지나치면서
나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1시간이 지난 아직도 그의 심장 박동이
느린 웨이브 파동 ECG를 그리면서 살아있는 것이었다

이런 경우를 나는 그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본 적이 없었다.
정말 신기하게 생각되면서도 쉽게 믿을 수가 없었다.

그날 오후는 쏟아지는 응급 환자들을 돌보느라
더 이상은 그에 대해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응급실은 거의 매일이 전장의 야전병원 같은 분위기였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자는 둥 마는 둥 그날 밤을 보냈다.

다음날 아침, 나는 왠지 갑자기 생각이 들어
다시 그 중환자실을 가보았다.
물론 지금쯤은 아무도 없는 빈 침대이거나
다른 환자가 누워 있으리란 당연한 생각으로였지만
왠지 그의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음은
스스로도 부정할 수 없었다.

방에 들어선 순간
나는 다시 한번 나의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직도 그가 있었다...

더없이 나약하지만 끊이지 않는
ECG 곡선을 그리며
그의 영혼은 아직 그의 몸을 떠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을 본 나는 무언가를 느꼈다.
왠지 이 세상에서 그가 쉽게 떠나지 못할
그 어떤 이유라도 있는 것일까.
이것은 과학적, 의학적 상식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 경우였다.

나는 의학적 지식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그 이상의 어떤 존재를
그 순간 무의식중에 감지했던 것 같다.

하루가 다시 그렇게 지나고
그의 심전도가 웨이브 파동을 그린지 장장 이틀이 지났다.
다음날 아침, 나는 다시 중환자실에 가보았다.

그의 신체는 죽은 것과 다름없었지만
영혼은 어떠한 이유인지는 몰라도
아직까지 더없이 미약하게나마 이 세상에
오래도록 머물고 있었다.

심전도를 나타내는 모니터 화면이 그 상황을 보여주고 있었고
나의 예사롭지 않은 느낌 역시 그것을 뒷받침해 주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한 젊은 여인이 중환자실로 들어왔다.
이제까지 보호자 중에 없었는데,
마치 멀리서 갑작스런 연락을 받고 급하게 온 듯했다.

젊은이의 애인인 듯했는데 마치 넋이 나간 사람처럼
제대로 환자를 쳐다보지도 못하고 창백한 얼굴로
금방이라도 바닥에 쓰러질 것만 같았다.

그의 곁으로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게
나는 옆으로 비켜주었다.
젊은 여인은 말없이 눈물을 흘리며 가까스로 침대 옆에 섰다.

바로 그 순간...
갑자기 그의 심전도 파동이 멈추었다.
모니터 화면에서 끊임없이 지속되던
웨이브 파동이 한순간 사라지고
마치 전원이 꺼진 것 같은 한줄기 직선만이 화면에 나타났다.

이틀간 미약하게나마 뛰어왔던 그의 심장이
바로 그때 멈춘 것이었다.
내 가슴은 순간 서늘해지면서 왠지 모를
거대한 느낌에 사로잡혔다.

이젠 정말로 이 세상을 떠난 그와
그이 곁에 남겨진 여인을 두고 나는 중환자실을 빠져나왔다.

그의 임종 소식을 전하고
나는 보호자 중의 한 사람에게
방금 온 그녀가 누구인지 물어보았다.

내게는 그녀가 그이 삶을 오늘까지,
정말 믿기지 않을 정도로 연장시킨 어떤 존재로까지
여겨졌던 것이다.

그녀는...
결혼한 지 3개월에 접어드는 그의 부인이었고
뱃속에 아기를 임신 중이었다.

놀라움과 마음속 깊숙이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의 파도가 밀려옴을 느끼며
나는 그 순간 내가 해야 할 행동이 무엇인지를 깨달았다.

그녀가 나오기를 기다렸다가 나는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이야기해 주었다...

세상을 떠나기 전에 당신과 뱃속의 아기를 만나기 위해
그가 얼마나 그 오랫동안 죽음과 삶의 경계에서
사투를 벌이면서 오랜 시간을 기다렸는지...
얼마나 힘겹고 가슴 아픈 영혼의 기다림이었는지...

그리고 그것은 부인과 그의 아기에게 전하는
그의 이 세상 마지막 메세지라고...

그것은 바로 가족 사랑의 작별 인사라고...

듣고 있는 그녀의 눈에서 넘치는 눈물을 바라보며
나는 두려움과 함께 어떤 한 경외심까지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애절하고 아름다운 사랑을 간직한 한 영혼이
바로 우리 곁을 떠나는 순간이었다.

나는 영혼의 존재를 믿는다...
존재를 믿을 뿐 아니라 생생히 느꼈고 경험했다.

그리고 그 존재를 이끌어주는 가장 큰 힘이
인간의 가족사랑, 부부사랑, 자식사랑이라는 것 역시...


- 출처: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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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무식한 부부


내 남편은 건설현장 근로자다.
말로는 다들 직업에 귀천이 없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는 엄연히 직업에 귀천이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세칭 노가다라는 직업을 가진 남자를
남편으로 둔 나는
그가 하는 일을 떳떳이 밝히지 못하고
어쩌다 친정엘 가도 풀이 죽는데,
"남들은 내 남편을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마음에 가끔 길을 가다가도

신축 중인 건설 현장을 보게 되면
걸음을 멈추고
"내 남편도 저렇케 일하겠지" 하는 생각에
눈시울을 적시곤 한다.

며칠 전
남편이 좋아하는 우렁이를 사려고 시장엘 갔다.
우렁이를 사고 막 돌아서려는데
인도네시아에서 온듯한 남자 둘이서
토시를 가르키면서

"이거 얼마예요?"
하고 서투른 우리말로 물어 보는게 아닌가.

아줌마가 천원이라고 답하자

그 두사람은 자기네 말로 뭐라 하면서
고개를 끄덕이는게 보였다
아마 비싸다는 표정인 거 같았다.

그 순간 나는 선량한 두 사람을 보고
이국 땅에 와 천대 받으면서 일하는
외국 근로자의 입장을 생각했고
또한 힘들게 일하는 내 남편이
잠깐이나마 그립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오늘은 햇빛이 따갑게 내리길래
널었던 이불을 걷으로
옥상에 올라 갔다가 무심코하늘을 보는데
"화인건설" 이라고 쓰여진 곤돌라가 눈에 띄었다.

언젠가 남편이 일하는 곳을 알려준 적이 있었다

가보지는 않았지만
남편이 일하고 있는 현장인거 같아
나는 열심히 그 곤돌라 밑으로
남편 옷 색깔을 찾아 보았다.

아!
조그맣게 남편이 보였다.
위험한 난간에서 나무 기둥을 붙들고
왔다갔다 하면서 망치로 못을 치고 있었다.
탕!탕! 못치는 소리도 들려왔다

그 순간 나? 울고 말았다.
왜 내 남편은 더운 날
저렇게 땡볕에서 일을 해야만
처 자식을 먹여 살릴 수 있을까.
꼭 저렇게 힘들게 일해야 하나

내려오는 계단에서
이불을 싸안고 오다가 그렁거리는
눈물 때문에 넘어 질 뻔 했다.

저녁을 먹고 남편에게
"다리 주물러 드릴께요 이쪽으로 누우세요"
했더니 눈이 동그래 졌다.
별일 다 보겠다는 표정이다.

나는 다리를 주무르면서
"당신 오늘 6층에서 일했죠"
"어, 어떻게 알았어?" 했다.

"오늘 이불 걷다가 봤어요,
우리 옥상에서 바라보면 왼쪽 끝에서 일했죠?" 했더니
"응" 하고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마도 자기가 고생하는 걸
내가 본게 못마땅한 것 같았다.

"냉커피 한잔 드릴까요?" 했더니
"아 타주면 잘먹지" 한다

사실 남편이
저녁 늦게 커피를 부탁하면 거절 했었다.

그다지 커피를 즐기는 편이 아니어서
밤에 커피를마시면
카페인 때문에 잠을 못자는 편이기 때문이다.

언제인가 밤에 커피를 마신 뒤
새벽까지 뒤척이더니
일 나갔다가 어지럽다고
그냥 집에 온 적이 있은 뒤부터
나는 되도록 늦은 커피는 타주지 않는다.

내마음을 아는 남편은
"내일 일 못 나가면 어쩌려고 커피를 타주지"했다.

"아유 뭐 어때요 하루 쉬면 되지 뭐" 했더니
남편은 빙긋 웃으면서
"우리 블랙 커피 한번 마셔 볼까?"
하고 장난기 어린 표정을 지었다.

"테레비 같은 데서
블랙커피 마시는 사람들 보니까 유식해 보이더라"

나는 웃음을 참으면서
정말로 설탕과 프림을 빼고
남편에게블랙 커피를 내밀었더니
한모금 마신 남편은 얼굴을 찡그리면서

"아우,무식한게 차라리 낫겠다.
못 마시겠다.우리 무식하고 말자"
하는게 아닌가.

하긴 블랙커피를 마신다고 모두 유식하면
무식한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우리 부부는 무식할 정도로 큰 소리로 웃었다.

잠자리에 누운 남편은
"당신 이번에 돈 나오면 바지 하나 사 입어.

거 왜 당신은 멋을 안부리는 거야?
옆집 진영이 엄마 같이
야들 야들한 바지 하나 사입어"했다.

"참 누군 못 사 입어서 안 입는줄 아세요?
당신 땡볕에서 땀 흘리며 번돈으로
어떻게 비싼 옷을 사 입어요?" 했더니

"다 당신하고 윤정이 위해일하는데 뭘 그래.
이번 달에 사입어 파마도 좀 하고"
나는 그만 목이 메었다.

그런걸 행복이라고 말해도 좋으리라.

지체 높으신 사모님 소릴 못들어도.
어떤 비싼 보석 같은게 아니 더라도
잠깐씩 이렇게 느껴 지는 걸
행복이라고 말해도 되지 않을까?

가끔 남편은
돈 많은 부모 못 만나 배우지 못해서
천대 받는 세상이 원망 스럽다고
울분을 토한 적이 있다.

그런 남편을 볼 때마다 나 또한
남편의 직업에 열등감을 느끼기도 했지만
이렇게 오늘 같이 잠깐씩 느끼는 감사함으로
남편 직업에 대한 회의를 잊고
깊은 행복감에 젖어든다.

아, 내일 남편의 점심 반찬을
무엇으로 해 드릴까?

자칭 무식한 우리 부부의 초여름 밤은
시원하게 깊어간다.


- 동서커피 문학상 입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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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이런 부류의 글을 카테고리까지 만들어 놓고 모으는 이유는, 삶에 부대껴 헐떡이다 지쳐 가끔 뒤돌아 보면 너무 삭막하게 사는 저 자신이 문득 불쌍하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또한, 가슴이 찡한 감동을 주는 글을 읽고 나면 제 나름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캡처를 하지 못해 놓친 글이 많습니다만 앞으로는 저작권에 문제가 없는 한 제 블로그에도 그러한 글들이 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두고 싶습니다.


참, 아시죠? 이런 글 읽을 때는 컴퓨터 앞의 마우스를 좌클릭, 우클릭하던 버릇은 잠시 억제하시고 차분하게 보셔야 한다는 것을요. ^^





신랑이 늦둥이라 저와 나이 차가 50년 넘게 나시는 어머님...

저 시집오고 5년만에 치매에 걸리셔서

저 혼자 4년간 똥오줌 받아내고, 잘 씻지도 못하고,

딸내미 얼굴도 못 보고, 매일 환자식 먹고,

간이침대에 쪼그려 잠들고,

4년간 남편 품에 단 한 번도 잠들지 못했고,

힘이 없으셔서 변을 못 누실 땐

제 손가락으로 파내는 일도 거의 매일이었지만

안 힘들다고, 평생 이 짓 해도 좋으니 살아만 계시라고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정신이 멀쩡하셨던 그 5년간 베풀어주신 사랑 덕분이었습니다.

제 나이 33살 먹도록 그렇게 선하고 지혜롭고 어진 이를

본적이 없습니다.

알콜중독으로 정신치료를 받고 계시는 아버지...

그런 아버지를 견디다 못해 제가 10살 때 집 나가서 소식 없는 엄마...

상습절도로 경찰서 들락날락하던 오빠...

그밑에서 매일 맞고, 울며 자란 저를 무슨 공주님인 줄 착각하는 신랑과



신랑에게 모든 이야기를 듣고는 눈물 글썽이며


한시라도 빨리 데려오고 싶다고 2천만원짜리 통장을 내어주시며,

어디 나라에서는 남의집 귀한 딸 데리고 올 때 소 팔고 집 팔아

지참금 주고 데려 온다는데, 부족하지만 받으라고...

그돈으로 하고 싶은 혼수, 사고 싶은 거 사서 시집오라

하셨던 어머님...

부모 정 모르고 큰 저는 그런 어머님께 반해,

신랑이 독립해 살고있던 아파트 일부러 처분하고

어머님댁 들어가서 셋이 살게 되었습니다.

신랑 10살도 되기 전에 과부 되어, 자식 다섯을 키우시면서도

평생을 자식들에게조차 언성 한 번 높이신 적이 없다는 어머님...

50 넘은 아주버님께서 평생 어머니 화내시는 걸 본적이

없다 하시네요.

바쁜 명절날 돕진 못할망정 튀김 위에 설탕 병을 깨트려

튀김도 다 망치고 병도 깬 저에게 1초도 망설임 없이

"아무 소리 말고 있거라" 하시고는

늙으면 죽어야 한다며 당신이 손에 힘이 없어 놓쳤다고

하시던 어머님...

단 거 몸에 안 좋다고 초콜렛 쩝쩝 먹고있는 제 등짝을

때리시면서도 나갔다 들어오실 땐 군것질거리 꼭 사 들고

"공주야~ 엄마 왔다~" 하시던 어머님..

어머님과 신랑과 저. 셋이 삼겹살에 소주 마시다

셋다 술이 과했는지 안 하던 속마음 얘기하다가,

자라온 서러움이 너무 많았던 저는

시어머니 앞에서 꺼이꺼이 울며 술주정을 했는데,

그런 황당한 며느리를 혼내긴 커녕

제 손을 잡으며, 저보다 더 서럽게 우시며,

얼마나 서러웠노, 얼마나 무서웠노..

처음부터 니가 내 딸로 태어났음 오죽 좋았겠나,

내가 더 잘해줄 테니 이제 잊어라..잊어라...하시던 어머님...

명절이나 손님 맞을 때 상 차린 거 치우려면

"아직 다 안 먹었다 방에 가 있어라"하시곤

소리 안 나게 살금살금 그릇 치우고 설거지 하시려다 저에게 들켜

서로 니가 왜 하니, 어머님이 왜 하세요 실랑이 하게 됐었죠...

제가 무슨 그리 귀한 몸이라고..

일 시키기 그저 아까우셔서 벌벌 떠시던 어머님.

치매에 걸려 본인 이름도 나이도 모르시면서도

험한 말씨 한번 안 쓰시고

그저 곱고 귀여운 어린 아이가 되신 어머님...

어느날 저에게 " 아이고 이쁘네~ 뉘 집 딸이고~~" 하시더이다.

그래서 저 웃으면서

"나는 정순X여사님(시어머님 함자십니다) 딸이지요~

할머니는 딸 있어요~?"했더니 "있지~~

서미X(제이름)이 우리 막내딸~ 위로 아들 둘이랑 딸 서이도 있다~"

그때서야 펑펑 울며 깨달았습니다.

이분 마음 속엔 제가, 딸 같은 며느리가 아니라

막내 시누 다음으로 또 하나 낳은 딸이었다는걸...

저에게...

"니가 내 제일 아픈 손가락이다." 하시던 말씀이 진짜였다는 걸...

정신 있으실 때, 어머님께 저는 항상 감사하고 사랑하고

잘하려 노력은 했지만 제가 정말 이분을 진짜 엄마로

여기고 대했는지...,

왜 더 잘하지 못했는지, 왜 사랑하고 고맙단 말을 매일 매일

해 드리진 못했는지...

형편 어렵고 애가 셋이라 병원에 얼굴도 안 비치던 형님..

형님이 돌보신다 해도 사양하고 제가 했어야 당연한 일인데,

왜 엄한 형님을 미워했는지...

말한마디 행동 하나하나가 사무치고 후회되어

혀를 깨물고 싶은 심정이었답니다.

밤 11시쯤,, 소변보셨나 확인하려고 이불 속에 손 넣는데

갑자기 제 손에 만 원짜리 한 장을 쥐여 주시더군요...

"이게 뭐에요?" 했더니 소근소근 귓속말로

"아침에~ 옆에 할매 가고 침대 밑에 있드라~

아무도 몰래 니 맛있는 거 사 묵어래이~" 하시는데 생각해보니

점심 때쯤 큰 아주버님도 왔다 가셨고, 첫째, 둘째 시누도

다녀갔고.. 남편도 퇴근해서 "할머니~ 잘 있으셨어요~?"

(자식들 몰라보셔서 언젠가부터 그리 부릅니다.) 인사하고

집에 들어갔는데...

아침 7시에 퇴원한 할머니가 떨어트린 돈을 주우시곤

당신 자식들에겐 안 주시고 갖고 계시다가 저에게 주신 거였어요.

그리곤 그날 새벽 화장실 다녀왔다 느낌이 이상해

어머님 코에 손을 대보니 돌아가셨더군요...

장례 치르는 동안 제일 바쁘게 움직여야 할 제가

울다 울다 졸도를 세 번 하고 누워 있느라 어머님 가시는 길에도

게으름을 피웠네요...

어머님을 닮아 시집살이가 뭔지 구경도 안 시킨 시아주버님과

시누이 셋. 그리고 남편과 저...

서로 부둥켜안고 서로 위로하며, 어머님 안 슬퍼하시게

우리 우애 좋게 잘살자 약속하며 그렇게 어머님 보내드렸어요..

오늘이 꼭 시어머님 가신지 150일째입니다..

어머님께서 매일 저 좋아하는 초콜렛,사탕을 사 들고 오시던

까만 비닐봉지.

주변에 널리고 널린 까만 비닐봉지만 보면 눈물이 납니다..

어머님이 주신 꼬깃꼬깃한 만 원짜리를 배게 밑에 넣어두고..

매일 어머님 꿈에 나오시면

사랑한다고... 감사하다고 말해 드리려 준비하며 잠듭니다.

다시 태어나면 처음부터 어머님 딸로 태어나길 바라는 건

너무 큰 욕심이겠죠...

부디 저희 어머님 좋은 곳으로 가시길..


다음 생에는 평생 고생 안 하고 평생 남편 사랑 듬뿍 받으며

살으시길 기도해 주세요.


- 출처: 미상




출처가 어디인지 아시는 분은 알려 주시기를 부탁합니다.







"다시는 하얀 와이셔츠를 사지 않을 거예요"
"여보! 이리와 봐!"
"왜요?"
"와이셔츠가 이게 뭐야, 또 하얀색이야?"
"당신은 하얀색이 너무 잘 어울려요."
"그래도 내가 다른 색깔로 사오라고 했잖아!"

한 주가 시작되는 월요일 아침부터 아내에게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하얀 와이셔츠말고 색상있는 와이셔츠로
사오라고 몇 번이고 일렀건만
또다시 하얀 와이셔츠를 사다놓은 것이었습니다.

"이 와이셔츠 다시 가서 바꿔와,"
"미안해요. 유행 따라 색깔있는 와이셔츠를
사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당신한테는
하얀색이 잘 어울리는 것 같아서...."
"도대체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듣나, 나 원 참...."



출근은 해야 하는데
몇 달째 계속 하얀색만 입고 가기가 창피했습니다.
한두 번 얘기한 것도 아니고 신랑을 어떻게 보고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죠,

아내는 방바닥에 펼쳐 있는
하얀 와이셔츠를 집어 차곡차곡 개기 시작했습니다.
그 순간 하얀색 와이셔츠의 소매 위로
물방울이 뚝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당신 지금 우는 거야?"
"......."
"신랑 출근하려는데 그렇게 울면 어떡해"
"저..., 이 옷...그냥 입어 주면 안 돼요?"
"왜 그래?"
"아니에요. 어서 출근하세요."

아내는 눈물을 감추지 못했고, 나는 좀 심했나,
아내 어깨를 두드리며 한참을 안아주었습니다.
그리고 아내의 눈물 젖은 하얀 와이셔츠를 입고
조금은 무거운 마음으로 출근을 했습니다.



"삐리릭 삐리릭!"

점심 식사시간, 마지막 숟가락을 놓자마자
휴대폰으로 문자 메시지 하나가 도착했습니다.

"정현주 님께서 보낸 메일이 도착했습니다".

후다닥 사무실로 들어와 확인을 해보니
세 개의 메일이 도착해 있었습니다.
두 개는 광고 메일이고 다른 하나는
조금 전 아내가 보낸 메일 이였습니다.

"아침부터 당신 화나게 해서 미안해요.
아직 당신한테 얘기하지 못한 게 있는데요.
말로 하기가 참 부끄러워 이렇게 메일로 대신해요."

무슨 얘기를 할지 조금은 긴장되고 떨렸습니다.

"여보, 제가 어렸을 때 가장 부러워 했던게
뭔지 아세요?
옆집 빨랫줄에 걸려있는 하얀 와이셔츠였어요.
'우리 아버지도 저런 옷을 입고
회사에 다닌다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 아버지요, 단 한번도...단 한번도...
와이셔츠를 입어보지 못하고 돌아가셨어요.
물론 와이셔츠하고는 거리가 먼 환경미화원이셨지만
줄줄이 셋이나 되는 우리 가족 뒷바라지에
새 옷 한 벌 입어본 적이 없을 정도로
알뜰하고 검소하게 살다가신 분이세요."



지금까지 장인어른에 대해 어떤 언급도 하지 않았던
아내에게 이런 사연이 있었다니...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여보, 그래서 전 당신 만나기 전부터 이런 결심도 했지요."
난 꼭 하얀 와이셔츠를 입을 수 있는 직업을 가진
사람과 결혼해야지.

결국은 제 소원대로 당신과 결혼을 했고
하얀 와이셔츠를 입고 출근하는
당신을 보면 너무 기분이 좋았어요.

그런데 이제는 하얀 와이셔츠를 사지 않을 거예요.
당신이 화내서가 아니에요 이제야 알았거든요.
하얀 와이셔츠를 입어 보지 못한 나의 아버지가
얼마나 자랑스러운 분 인지를요.

늘 조금 굽은 어깨로 거리의 이곳 저곳을
청소하러 다니시는 나의 아버지야말로 하얀
와이셔츠만큼이나 마음이 하얀 분이라는 걸요.



그제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왜 이렇게 아내가 하얀 와이셔츠만 사오는지...,
나는 곧장 휴대폰을 꺼내 아내에게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여보, 나 지금 뭐하고 있는 줄 알아?
아침에 당신이 하얀 와이셔츠 소매에 흘린
눈물자국 위에 입맞춤하고 있다구.
사랑해. 진심으로..."

- 사랑하기에 아름다운 이야기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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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보고서는 한번 포스팅해야지 하고 생각만 하고 있다가 잊어버리고 있었던 다큐멘터리 영화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옛날부터 "소는 영물이다."라는 말이 있었죠. 왜 영물인지 느끼게 해주는 감동적인 다큐멘터리 영화입니다.

제가 어릴 때에는 부산 근교에서도 소를 보는 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시골에 가더라도 목장이 아닌 가정집에서 키우는 우리나라 토종 한우 구경하기가 힘들어졌습니다. 기억하기로 그렇게 선한 눈망울을 가진 동물을 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이런 영화가 많이 많이 만들어지기를 바랍니다.




아래 영상은 공식 예고편입니다.


아래 영상은 공식 예고편은 아닙니다만 조금 더 보실 수 있습니다.


마지막 순간 할아버지의 "좋은 데 가거래이."라는 말이 떨어지자 그 말의 의미를 알기라도 하듯이 고개를 떨어뜨리는 소의 모습에서 감동이 물 밀듯이 밀려옵니다.

시간 되시는 분들은 꼭 감상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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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점 출입문이 열리더니
여덟살 쯤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가
어른의 손을 이끌고 느릿느릿 안으로 들어왔다.
두 사람의 너절한 행색은
한 눈에도 걸인임을 짐작 할 수 있었다.
퀴퀴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주인아저씨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그들을 향해 소리쳤다.

" 이봐요!!
아직 개시도 못했으니까
다음에 와요!! "

아이는 아무 말 없이 앞 못보는
아빠의 손을 이끌고 음식점 중간에 자리를 잡았다.



주인아저씨는 그때서야
그들이 음식을 먹으러 왔다는 것을 알았다...

" 저어... 아저씨! 순대국 두 그릇 주세요. "

" 응 알았다.
근데 얘야 이리 좀 와 볼래 "

계산대에 앉아 있던 주인 아저씨는
손짓을 하며 아이를 불렀다.

" 미안하지만
지금은 음식을 팔 수가 없구나...
거긴 예약 손님들이 앉을 자리라서 말야. "

그렇지 않아도 주눅이 든 아이는
주인아저씨의 말에
낯빛이 금방 시무룩해졌다.



" 아저씨 빨리 먹고 갈께요.
오늘이 우리 아빠 생일이에요... "

아이는 비에 젖어 눅눅해진 천원짜리 몇 장과
한 주먹의 동전을 꺼내 보였다.

" 알았다. 그럼 빨리 먹고 나가야한다. "
아저씨 빨리 먹고 갈께요...
오늘이 우리 아빠 생일이에요... "



잠시 후 주인 아저씨는
순대국 두 그릇을 갖다 주었다.
그리고 계산대에 앉아서
물끄러미 그들의 모습을 바라봤다.



" 아빠, 내가 소금 넣어 줄께. "

아이는 그렇게 말하고는
소금통 대신
자신의 국밥 그릇으로 수저를 가져갔다.
그리고는 국밥 속에 들어 있던 순대며 고기들을 떠서
앞 못보는 아빠의 그릇에 가득 담아 주었다.



" 아빠 이제 됐어 어서 먹어.
근데 아저씨가 우리 빨리 먹고 가야 한댔으니까
어서 밥 떠
내가 김치 올려줄께. "
수저를 들고 있는 아빠의 두 눈 가득히 눈물이 고여 있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주인 아저씨는
조금 전에 자기가 했던
일에 대한 뉘우침으로
그들의 얼굴을 바라 볼 수 가 없었다.


- 출처: 불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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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자신을 되돌아 볼 수 있는 시간을 주는 사람입니다. 오토다케 히로타다라는 분도 그렇지만 이 분 역시 정말 치열한 삶을 살며 자기에게 매순간 최선을 다 하는 분인 것 같습니다.

말이 필요없습니다. 일단 보시죠~

닉 부이치치(Nick Vujicic)



저작권 때문에 동영상 링크로 대신합니다. 꼭 가셔서 보시기 바랍니다.

닉 부이치치 동영상 보러 가기


- 출처: 네이버 블로그

"5 빼기 3은 뭘까요?"
"스님! 퀴즈 하나 낼테니 맞혀 보세요."


지난 여름수련회 때의 일이다..
초등학교 4학년인 한 꼬마가 수수께끼라며
갑자기 문제를 냈다.


"5 빼기 3은 뭘까요?"


한참을 궁리했다.
난센스 문제 같기도 하고 아니면
무슨 의미가 내포되어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별의별 생각을 다한 뒤에 "글쎄.."라고 답했다.

그랬더니 이 꼬마 녀석이 "스님은 바보예요.
이렇게 쉬운 것도 못 맞혀요"하며 깔깔 웃었다.

내가 알려 달라고 하니
과자를 주면 알려 주겠다고 해
과자 한 봉지를 건네주었다.

"굉장히 쉬워요.
5 빼기 3은 2예요." 나는 피식 웃음이 났다.

꼬마는 또 물었다. "그 뜻은 무엇일까요?"

'하! 이건 또 뭐야?'
혼자 중얼거리며 생각에 잠겨 있는데,
그 녀석 하는 말이 걸작이다.

"오(5)해를 타인의 입장에서 세(3)번만 더 생각하면
이(2)해가 된다는 뜻이랍니다."

순간 나는 무릎을 쳤다. "맞아!"

이후 어디에서 법문 요청이 오면 '5 빼기 3'이
나의 단골 메뉴가 됐다.

오해로 인해 얼마나 가슴 아파했던가?
오해로 인해 얼마나 많은 다툼이 있었던가?

이 오해는 어디서 올까? 이해하지 못함에서 오겠지..

이해가 안 되는 건 왜일까?
내 입장에??생각해서겠지.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이해할까?
타인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되겠지.

누가 내게 욕을 할 때는
그럴 만한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어서다.
그 사람의 입장에서
욕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찾아보자.

이해가 되면 분노가 사라진다..
이해가 되면 내가 편해진다.

5 빼기 3은 2!
삶을 새롭게 하는 커다란 힘을 가졌다.

꼬마는 신이 나서 퀴즈를 하나 더 냈다.
"2 더하기 2는요?"

나는 가볍게 알아맞혔다. "4지 뭐니."

"맞았어요. 그럼 그 뜻은요?" 하고 되묻는다.


또 한참을 궁리하다 모른다고 했더니, 그 꼬마는
"이(2)해하고 또 이(2)해하는 게 사(4)랑이래요"
라고 말한 뒤 깔깔대며 뛰어간다.

이 얼마나 멋진 말인가?
'이해하고 또 이해하는 게 사랑이라….'

올여름 땀 흘리며 얻은 가장 큰 보람 중 하나다.
올겨울 여러분도 5 빼기 3으로 마음을 넓히고,
2 더하기 2로 멋진 사랑을 해보면 어떨까
이 글은 제가 자주 가는 동호회의 한 회원분께서 올려주신 글입니다.
실제 이분은 가드너 증후군이라는 병마 때문에 부인과 사별하시고, 딸에게까지 그 병마가 유전되지는 않을지 노심초사하셨습니다.

자식 키우는 부모입장이라면 자식에 대한 걱정은 모두가 공감하리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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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가장 기쁜 날이었습니다.
너무 기뻐 눈물이 흐르고, 잠 못 이루다가 밤늦게 미니홈피(http://www.cyworld.com/han)에 글을 남겼네요.

━━━━━━━━━━━━━━━━━━━━━━━━━━━━━━━━━━━━━━━━━━

여보! 난 오늘부터 편하게 잠들 것 같아.
이 사진처럼 웃고 있는 단우의 미소를 계속해서 지켜줄 수 있으니까...
그토록 기도해왔던 소원이 이루어졌거든.
단우가 태어나기 전부터, 엄밀히 말하자면 우리가 결혼하기 전부터 당신과 함께 기도하던 기도제목이 응답받았어.

엄마의 병이 엄마 세대에서 끝이 나도록 해주십시오.
우리 가계에 더 이상의 저주가 흐르지 않도록 해주십시오.

단우가 자기에게도 발병될 이 병이 단우 평생의 멍에가 되어 살아가진 않을까 싶어 단우 이마에 손을 얹고 기도를 할 때면 항상 먼저 나왔던 그 기도가... 이젠 간구하는 기도가 아니라 감사의 기도로 바뀌었어.

서울대병원 유전자 암연구소에서 검사결과가 나왔어.
아니 검사결과는 나온지 오래됐을텐데 사실 내가 너무 두려워서 차마 그 결과를 알아보러 가질 못했어.
갔다가 쓰러지면 어떻하지? 이걸 나혼자만 비밀로 간직한 채로 살아야할텐데... 여러 생각 때문에 미루고 미루다가 잊고 살까 하다가 그런다고 잊혀질 일이 아닌 것 같아서 물어봤어.

"박은주씨에게 보이던 유전자의 돌연변이가 단우에게는 보이지 않습니다. 아빠의 정상적인 유전자만 물려받았으므로 일반인과 같은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토록 바라던 회신이지만 믿어지지가 않더라...
혹시 다른 사람 샘플을 가지고 잘못 말한게 아닐까? 아니면 날 그냥 위로하려고 그러는게 아닐까 싶어서 몇 번 물어봤는데 정말이야.
꿈이 아니야...

얼마나 기뻤는지 전화를 받고 학교 복도에서 울었어. 기뻐서 이렇게 운게 아마 처음인가봐... (당신과 결혼할 때도 울진 않았는데...ㅎ)
막 가슴이 터질 것만 같고, 소리를 지르고 싶고, 그냥 무릎꿇어 기도만 하고 싶었는데... 내 마음 당신도 알지? 알다 뿐이겠어? 나와 같은 마음이었을텐데...

우리 연애할 때 당신의 병 진단을 받고 막연한 믿음으로 "우리가 결혼해서 아이를 낳아도 유전되지 않을꺼야,
유전되었다 하더라도 20년 넘어서 발병될테니 그 땐 획기적인 치료법이 존재할꺼야." 이렇게 믿으며 결혼하고 단우를 낳고 지내다가 막상 정말 가드너신드롬에 결국 무너지고만 당신이 자꾸 생각나서 솔직히 자신이 없었거든.

이 세상에서 가장 하기 싫은 상상이지만 혹시라도 단우에게 이 일이 생긴다면 내가 과연 그 때도 견뎌낼 수 있을까 생각하면 자다가도 벌떡 깨어 멀쩡히 자고 있는 애 부둥켜 안고 울었던 날이 하루이틀이 아닌데 그 눈물이... 그 기도가... 드디어 이루어졌어. 하루종일 UP된 날 보고 누가 묻더라. 로또 되었냐고...
로또1등 보다 더 귀한 내 딸의 생명을 얻었는데 로또1등이 당첨되었어도 이보다 기쁘진 못할꺼야. 당신이 여기에서 나와 함께 이 소식을 들었으면 내색 않던 당신 마음의 무거움이 조금이라도 가벼워졌을텐데... 아마 이 기쁜 소식에 당신의 병이라도 나은 듯 훨훨 날아다녔을텐데...

이 소식을 듣고 어린이집에 단우 만나자마자 얘기를 해줬더니 뭐가 몬지 모르는 이 녀석은 "엄마 지금은 안 아파요?" 묻는다. ㅎㅎ
내가 엄마처럼 단우는 아프지 않아. 앞으로 그럴 일이 없어. 그랬거든...
오늘같은 날은 강도 당해도 실실 웃으며 돈 다 빼줄 것만 같고, 누가 내 차 박아도 그냥 가세요~ 하며 웃을 것만 같아.

만일 오늘 이 결과가 반대로 나왔다면 누군가 "지난 번에 단우 유전자 검사한다고 한 거 결과 나왔어요?"라고 물었을 때 "아직 결과 안 물어봤어요. 그냥 모르고 지내는게 나을 것 같아요"라고 애써 태연한 척 대답하며 살아야했겠지?
이젠 자기가 그토록 힘들었던 병명이 밝혀지는 것조차 단우에게 짐이 될까봐 쉬쉬했었는데 속시원히 말할 수 있을 것 같아.
어쩌면... 당신이 단우에게까지는 안 가도록 그 짐을 다 지었구나.
그러느라 그리 힘들었구나...



☞ 가드너증후군 [Gardner syndrome]

  • 요약: 대장 용종 외에도 골종양, 연부조직 종양 등이 발생하는 유전병.
  • 본문: 1951년 미국의 의사 E.J.가드너가 처음 보고하였기 때문에 그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 종양 억제역할을 하는 APC 유전자 돌연변이로 인해 발생하며, 상염색체 우성으로 유전한다. 대장 전체에 나타나지만 특히 S상결장 및 직장에 걸쳐서 1㎝ 미만의 선종성 용종이 최소한 100개 이상 나타나는데, 대장 전체 점막을 다 덮을 정도로 많이 발생할 수도 있다. 골종양은 주로 머리·발·턱뼈에 나타나며, 연부조직 종양은 장 사이의 막 또는 복막 뒤쪽에 생긴다. 환자의 50% 정도는 위 또는 십이지장에도 이러한 용종이 나타난다. 이와 함께 점막표피유사낭종, 인대모양종양, 치아이상 등을 동반할 수 있다. 이러한 용종은 20세 이전에 생기며 치료하지 않으면 진행하여 대장암으로 발전한다. 일반적으로 사춘기 이전에는 증세가 나타나지 않다가 20~30대 나이가 되면 설사를 하거나 대변에 피가 섞어서 나오기 시작한다. 이와 동반하여 빈혈을 일으키고, 대변에 점액이 섞여서 나올 수 있으며, 복통 또는 장폐쇄 등을 일으킬 수 있다. 이때 제대로 치료하지 않으면 40대에는 대장암으로 진행한다. 그밖에 췌장암·갑상선암·뇌종양이 발생할 확률도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치료는 대장암이 발생하기 전에 수술을 통해 전체 대장을 절제한다. 이와 함께 경우에 따라서는 직장 전체를 절제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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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다른 사람의 실패를 즐거워 합니다.
(사람은 따로 따로 떨어진 섬이 아니라 대륙의 한조각 입니다.
한 사람의 승리가 우리 모두의 승리로 이어지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2. 눈앞에서 뻔히 새치기를 당해도 아무 말 하지 못합니다.
(자기의 주장을 전혀 하지 못합니다. 내 행동을 통해 결과를 생각해 봅니다.)


3. 항상 텔레비전과 라디오를 켜놓습니다.
(자신을 돌아볼 시간을 뺏기며, 다른 사람과 풍요로운 관계를 맺지 못합니다.)


4. 항상 그럴듯한 핑계로 자기 행동을 합리화 합니다.
(남과 자기 자신에게 거짓말을 합니다.
이 일이 계속 된다면 아무런 발전과 변화가 없습니다.
변화된 나의 모습을 생각하고 행동합니다.)


5. 병이나 사고로 병원에 누워 있기를 바랍니다.
(인생에 도전할 만한 의욕이 없고 지쳐 있습니다.)


6. 스스로 판단하기보다 지시를 따르는 것이 마음이 편합니다.
(자신에게 명령을 내리고 구속해줄 조직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중요한 목표를 점검하며 그목표가 왜 중요한지,
그 목표를 성취함으로써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 생각해 봅니다.)


7. 다른 사람의 의견을 지나칠 정도로 의식합니다.
(다른 사람의 의견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사람들은
고립증후군 으로 악화 될수 있습니다.
사람들의 시선에 지나치게 민감하다 보면 그에 따라 행동하게 되고
다른 사람의 말과 생각에 따라 좌지우지 될 수 있습니다.)


8. 사소한 문제를 결정하는 데도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립니다.
(자신의 결정에 대해 확신을 가지지 못하고 미루거나 의심을 갖습니다.
에디슨은 전구를 만들기 위해 수백번 실패를 했다고 합니다.
실패에서 성공을 배우며, 최선의 선택을 하는 연습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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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남에게 도와달라는 말을 하기 쉽지가 않습니다.
(주위 사람들의 도움과 호의를 받아들일 줄 알아야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원만해 집니다.)


10. 하루에도 몇 번씩 감정이 바뀝니다.
(사람이 항상 기분이 좋거나 나쁠 수만은 없습니다.
하지만, 이 증상이 오래 되면 자신도 괴로우며
주위사람들도 당황하게 됩니다.
신체적인 원인과 감정적인 원인을 생각해 봅니다.)

 
11. 일을 대충 처리하고 다른 일을 또 다시 합니다.
(일을 시작하기 전에 계획을 세워 그 계획 대로 추진해 봅니다.)


12. 나에게 재수없는 일들만 일어난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것을 운의 탓으로 돌립니다.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기 시작하는 그때부터
삶의 행운으로 가득할 것입니다.)


13. 공상에 시간을 너무 낭비 합니다.
(중요한 것은 앞으로 다가올 날들입니다.)


14. 화가 난 상태를 항상 즐깁니다.
(다른 사람에게 죄책감에 시달리며 고립된 자신을 발견하고
절망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심리적인 측면과 육체적으로도 병이 될수 있습니다.
자신을 불행에 빠뜨리는 부정적인 감정을 조절합니다.)


15. 내 생각대로 성급하게 결론을 내리고 왜곡 시킵니다.
(자신의 사고방식에 모든것을 맞추기 때문에
사람들의 말과 행동을 자신의 생각대로 왜곡하고
진실에서 멀어 질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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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무의미하다고 생각하는 인간관계에 상처를 받습니다.
(사람의 관심을 끄는 가장 좋은 방법은
스스로 가장 좋은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17. 회의에서 제일 먼저 질문하거나 발표하지 못합니다
(자신의 아이디어가 가장 좋은 것이 아니라 할지라도
어떤 행동에 지나치게 소심해져서는 안됩니다.)


18. 사소한일에도 쉽게 흥분하고 화를 냅니다.
(인생에서 정말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떠올려 봅니다.)


19. 내 말을 따르지 않으면 화가 납니다.
(사람에 대한 진정한 이해가 없이는
자신이나 타인을 통제할 수 없습니다.)


20. 늘 판에 박힌 생활 속에서 무기력 합니다.
(자신이 원하는 꿈을 위해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행동계획을 실천해봅니다.)

 
21. 이유 없이 미운 사람이 있습니다.
(자신을 화나게 만드는 사람이
바로 자신을 정복하는 사람이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자신을 화나게 하는 사람의 장점을 찾아내 봅니다.)


22. 쉽게 산만해집니다.
(한 가지일을 완전히 이해하고 실천하고 완성하는 것을 익혀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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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초능력이나 텔레파시 같은 능력이 생기기를 바랍니다.
(주어진 상황에 최선을 다해 노력해봅니다.)


24. 몇 분이면 할 수있는 간단한 일조차 미루고 하지 않습니다.
(간단한 일도 많이 모이면 어려워지고 중요해집니다.)


25. 문제가 생기면 저절로 해결되기를 바랍니다.
(이 문제를 지금 바로 해결한다면
내 인생이 어떻게 달라질 것인지 직시하고 행동을 취합니다.)



26. 남의 험담을 즐깁니다.
(단순한 관심을 떠나 비난과 험담은 위험합니다.
한마디를 하더라도 책임있고 도움이 되는 따뜻한 말이 소중합니다.
속담에 '위인은 사상을 논하고
보통 사람은 사물을 논하고
소인은 다른 사람의 얘기를 한다'고 합니다.)


27. 항상 마음이 피곤하고 지쳐 있습니다.
(부정적인 감정들에 너무 신경을 쓰는 것은 아닌지 살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긍정적인 생각은 긍정적인 힘을 준다고 합니다. 휴식 또한 필요할 수 있습니다.)


28. 남의 말에 쉽게 의기소침해지고 결국엔 단념합니다.
(자신이 성공할 것이라는 일에만 노력을 기울입니다.
일의 도전을 받아들입니다.
도전이 없으면 성장도 없습니다.

셰익스피어는 '의심은 우리를 배반하고
시작 자체를 두려워 하게 만들어
우리가 얻을 수도 있는 멋진 것을
잃게 만든다'고 했습니다.)


29. 좋은 사람이지만 때로는 냉정하고 잔인합니다.
(스스로 무엇 때문에 화를 내는 것인지 살펴봅니다
당황, 실망, 분노, 상처, 배신이 누구를 향한 것인지 생각해봅니다.)


30. 징크스와 같은 미신을 믿습니다.
(관련된 의식으로 행동을 반복하는 노예가 될 수 있습니다.
부정적인 생각에서 벗어나 긍정적인 기억으로 전환시킵니다.

사람은 자신이 생각한 모습대로 되는 것이다. - 엘 나이팅 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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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게으르고 의욕이 없습니다.
(나에게 절대적으로 중요한 것을 명확히 하고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목표를 통해 자신을 발견해 봅니다.)


32. 배고프지 않아도 무심코 무언가를 먹습니다.
(자신의 느낌, 기분, 생각이 마음에 들지 않아 발생합니다.
먹을 것을 찾는 대신
자신이 할 수 있는 즐거운 일들을 찾아봅니다.)


33. 권위적인 사람 앞에서는 자꾸 움츠러듭니다.
(권위에 대한 지나친 순종은 두려워하는 마음까지 들게합니다.
상대방의 권위는 나에게서부터 나온다는 인식이 필요합니다.


34.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을 알면서도 실천하지 않습니다.
(자신을 돌보는 시간을 사치라 생각합니다.
자신만의 시간을 계획하고 행복해지기로 결심합니다.)


35. 새로운 상황이 생기는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자신에게 익숙한 길로만 가려하고 새로운 길을 외면 합니다.

배는 항구에 있으면 안전하지만
항구에 있기 위해 만들어진 것은 아닙니다. - 호주 속담)


36. 나 한 사람쯤 사라져도 된다는 생각을 합니다.
('나의 인생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해봅니다.
당신은 이 세상의 선물이자 소중한 존재입니다.)


37. 남들보다 도덕적으로 우월하다고 느낍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다 잘못한다고 생각합니다.)


38. 다른 사람과 나 자신을 끊임없이 비교합니다.
(비교가 반드시 나쁜것은 아닙니다.
단지 여기선 타인을 적으로 부정적인 모습으로 비교하는 경우입니다
어떤 사람으로 부터 어떤 점을 배울 수 있는지를 살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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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단순한 일도 복잡하게 처리합니다
(마감 시간을 정해놓고 지키도록 해봅니다.
사소한 일을 신속히 처리하면 시간의 여유가 생깁니다.)


40. 아무도 나를 진정으로 이해하지 못합니다.
(대화란 일방통행이 아니며 주고 받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다른 사람에게 자신을 정확히 표현하기 위해선
내가 누구인가 알아야 하고,
타인에게 설명할 수 있는 준비된 모습을
갖추어야합니다.)
 
 
41. 지나치게 예민하다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주변에서 일어 난 모든 일들을 자신과 연결시킵니다.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지나치게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지나치게 민감한 반응을 보이기도 합니다.)


42. 능력이 없는 것도 아닌데 되는 일이 별로 없습니다.
(자신의 흥미를 많이 끄는 한 가지 목표에 대한
최종 기한을 정해 보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43. 잘못된 습관을 고치기 어렵습니다.
(자신의 반복적인 나쁜 습관을 살펴보고 행동을 파악해봅니다.
변화된 모습을 상상하며 변화된 행동을 하고
바꾸어야 할 것들을 생각 합니다.)


44. 언젠가 죽는다는 것이 두렵습니다.
(하루하루를 자신의 처음이자 마지막이라 생각하며
소중히 살고
죽음에 대한 걱정보단
앞으로 이루고자하는 일들을 위한 삶을 생각합니다.)


45. 100가지 중 하나만 잘못 돼도 그것에 집착합니다.
(자신에 대한 자신감에 이끌리는 현상입니다.
자신을 너무 미워하지 말고
지나친 자책 보다 격려를 해주며 과정을 살펴봅니다.)


46. 경쟁 의식에 불이 탑니다.
(지나치게 결과에 집착하기보다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것에 의미를 두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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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처를 줍니다.
(자신의 인생에서 무엇이 빠졌는지 무엇이 소중한지 생각해봅니다.
자신에게 충실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도 넉넉하고 편하게 다가갈 수 있습니다.)


48. 나는 늘 혼자입니다.
(타인과의 관계에 적응을 잘못하는 경우입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진실한 관심을 보이는 사람에게 긍정적이니
내가  먼저 상대방에게 관심을 가져봅니다.)


49. 남이 알아듣지 못할 말을 중얼거리곤 합니다.
(지금 나에게 불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정리를 하며
자신이 무엇에 명확히 집중해야 할지 생각합니다.)


50. 호사다마의 법칙을 믿습니다.
(행운을 너무 기뻐하면 불운이 닥칠까 겁이 납니다.
'난 안 된다'고 스스로 예언하지 말며
행운에 더 큰 행운을 기대하며 큰 꿈을 꾸어봅니다.)
 
51. 거울에 비친 초라한 나의 모습을 바라봅니다.
(나의 모습이 가장 초라하게 느껴지는 순간
자신의 참된 가치를 다시 한번 생각해봅니다.)
 
 
52. 해야 할 일들을 까맣게 잊어버립니다.
(복잡한 일들과 불필요한 생각들을 정리합니다.
필요한 때에 필요한
행동을 취하는 것을 기억하고 반복합니다.)
 
 
53. 남은 인생을 설계하는데 관심이 없습니다.
(다가오는 시간에 무엇을 할 것인지 생각합니다.
미래를 준비하고
계획하지 않으면
과거의 기억에 얽매여 살게 됩니다.

인생의
소중한 하루하루를
그 날 자신이 한 일과 맞바꾸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봅니다.)
 
 
54. 많은 사람 안에서도 나는 외롭습니다.
(스스로를 초라하고 가치 없는 존재로 미미하게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어떤 표정, 어떤 말투, 어떤 태도
의 사람에게
더 관심을 갖는지 생각하며 자신감을 가져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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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한가지 일도 제대로 끝내지 못하고 찾아 헤맵니다.
(마음 속에 뚜렷한 목표가 있다면 어떤 일이 있어도 쉽게 이겨낼
수 있습니다.
역시 나는 안돼하며 낙심하고 포기해 버리느냐
흐트러진 마음을 가다듬고 계속 시도하느냐에 따라
인생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56. 물건을 찾아 헤메이며 찾습니다.
(항상 같은 장소를 이용합니다.
상상이나 메모를 하여 그 장소
를 떠올려 봅니다.)
 
 
57. 나는 항상 사람들을 기다리게 만듭니다.
(모두에게 피해를 주게 된다는 사실을 잊지 않습니다.
자신을
존중하지 않고는 다른 사람을 존중할수 없고
그 반대로 남을
존중하지 않으면 자신도 존중받을 수 없습니다.)
 
 
58. 항상 어딘가에 걸려 넘어지고 물건을 잘 떨어 드립니다.
(인생의 목표에 따른 행동이 분명해지면
신체의 균형 감각이
더 발달 될수 있습니다.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계획을 만들어
행동합니다.)
 
 
59. 죽고 싶다는 말을 자주 합니다
(우울증의 증후일 수 있고, 죽음에 대한 호기심일 수도 있
습니다.
성공한 자신의 모습을 그려보며 어제의 나를 죽이고
오늘의 나로 다시 태어나 인생의 부정적인 측면들, 죄책감
이나
소외감, 고독, 좌절, 낙심, 절망, 과대망상, 소모적인 자기연민
등을 떨쳐 버리고
자신감, 용기, 기쁨, 희망, 지혜, 평화, 사랑, 도전, 성공,
소망, 꿈, 비젼 등
바람직하고 긍정적인 특성을 내 안에서
이끌어냅니다.)
 
 
60. 나에게 정해진 운명이나 숙명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들은 삶의 순간순간마다 선택의 갈림길에 서게 됩니다.
그때마다 나에게 주어진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한다면
나의 운명은 달라 질것입니다.)
 
 
61. 다른 사람의 거절에 쉽게 상처 받습니다
(모든 것을 흑백논리로 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조금이라도
부정적인 모습을 보이면
곧바로 자신이 뭔가 부족하기 때문
이라 생각해
좌절감 속으로 빠져듭니다.

오해를 하거나
정보가 잘못 전달 되었는지 생각해봅니다.
자신의 의사 표현
을 상대방의 입장에서 점검해봅니다.)
 
 
62. 다른 사람의 부탁을 잘 거절하지 못합니다.
(자신의 의견도 중요하며
그만큼 존중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상대에게 말하여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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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항상 무언가 빼먹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
(순간 순간에 무엇인가 비어있는 듯한 인생에 의미를 부여하여봅니다.)
 
 
64. 남들의 비밀이나 고백에 유달리 관심이 많습니다.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에
가능한 많은 정보
를 가지고 이에 대비하고 싶어 합니다.
다른 사람의
실수를 캐내려하기보다 도움을 주는 방향으로 전환해봅니다.)
 
 
65. 주위 사람들의 사랑과 관심을 확인하려 듭니다.
(주위 사람들과 나의 사랑의 차이점이 무엇인지 알아낸다면
서로를 보다 신뢰 할 수 있을 것입니다.)
 
 
66. 중요한 것을 놓칠까봐 항상 일찍 도착하려 합니다.
(자신의 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습관을 길러 봅니다.)
 
 
67. 위험에 빠진 사람들을 구출하는 공상을 자주 합니다.
(일상 생활에서 작은 실천을 통해 주변에 힘이 되어 봅니다.)
 
 
68. 배고픈지 알기 위해 굳이 시계를 들여다봅니다.
(자신의 생각을 믿지 못하고 느낌을 확신시켜 줄 증거를 찾습니다.
시간에 맞추어 감정을 결정내립니다.)
 
 
69. 잘못한 것도 없이 일단 사과를 하거나 변명부터 합니다.
(불편한 상황을 모면하고 사람들과의 언쟁을 피하기 위한 형식적인 답변은
나를 포기하는 것이며
상대방이 진심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70. 외모 콤플렉스에 벗어나지 못합니다.
(내 모습이 아닐때에는 아무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습니다.
외모를 통해 상대방에게 나를 표현 합니다.
그러나  외모는 나를 나타내는 일부분일 뿐이며
더 중요한 것은
마음, 표정, 말, 억양, 감정, 행동, 눈빛과 같은
자신의 내면으로 나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외모는 내면을 따라 아름답게 변화 될 것입니다.
얼굴은 마음의 표상입니다.
내 얼굴 표정으로 상대방이 달라질 수 있고
 
내 운명이 바꿜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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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자신이 세상과 남들을 속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을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세상이 자기를 어떻게
평가하는지
자신이 생각하는 진정한 자신의 모습은 어떤지
떠올려 보며
그 둘 사이의 어떠한 차이이 있는지 생각해 봅니다.)

 
72. 멍청한 행동을 하곤 합니다.
(작은 실수로부터 삶의 큰 교훈을 얻었다고 생각해 봅니다.
똑같은 실수가 반복되지 않게 문제의 원인을 살펴 봅니다.)

 
73. 나는 사랑받지 못하는 존재입니다.
(주위에 울타리를 만들고 자신을 방어하려고만 한다면
타인의
사랑을 받아들일 공간이 없습니다.
'나' 중심적인 사랑보다 '우리' 중심적인 사랑을 생각해봅니다.)

 
74. 자신의 중요한 일을 제쳐 두고 남의 일에 팔을 걷어 붙입니다.
(자기 자신을 포기하고 남의 일을 돕는 것입니다.
 자신의 일을 통해 더 많은 이웃을 더 많이 도울 수 있습니다.)

 
75. 칭찬이나 찬사를 들으면 왠지 마음이 불편합니다.
(정도가 지나친 겸손은 오히려 상대의 호의를 무색하게 만들고
부정적으로 생각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76. 사랑하는 사람이 죽거나 다치는 상상을 자주 합니다.
(소중한 사람들이 내 삶에 언제 사라져 버릴지 못한다는 불안감
을 안고 살아가면
어느 한 순간 인생의 의미가 없어져 삶의 이유 마저 상실할 수 있습니다.)

 
77. 틀렸다는 것을 알면서도 주장을 바꾸지 않습니다.
(틀렸다고 인정하는 것이 지는 것은 아닙니다.
사실을 직시하고 통찰력을 갖는 것이며
새로운 교훈을 얻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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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http://www.sunghoonjung.com/zb5/?article_srl=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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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하셨습니까?

긴 여운이 남는 글입니다. 유부남들께서는 아내에게 소홀하거나 미안한 일이 있을 때마다 한번씩 읽어 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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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걸레질 하는 소리.......

여 : 아! 발 좀 치워봐.

(지금 허름한 바지를 입고 엉덩이를 들썩이며 방걸레질을 하는 그녀,
아내... 그 모습을 보면서, 나도 만약 그런 질문을 받는다면, 나 역시
아내라고 대답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여 : 점심은 비빔밥 대강 해먹을라 그러는데, 괜찮지?
남 : 또 양푼에 비벼먹자고?
여 : 어, 먹고나서, 베란다 청소 좀 같이 하자. 집안 청소 다 했더니,
힘들어 죽겠어.
남 : 나 점심 약속 있어.
여 : 그런 얘기 없었잖아.
남 : .... 있었어. 깜박하고 말 안한거야. 중식이...
중식이 만나기로 했잖아.
여 : ...그래? 할 수 없지 뭐.

(해외출장 가있는 친구 중식이를 팔아놓고, 중식이한테도 아내에게
도 약간 미안한 마음은 들었지만, 한가로운 일요일, 난 아내와 집에
서 이렇게라도 탈출하고
싶었다.)

(나름대로 근사하게 차려입고 나가려는데, 커다란 양푼에 밥을 비벼
서, 숟가락 가득 입에 넣고 우물거리던 아내가, 나를 본다. 펑퍼짐한
바지에 한쪽 다리를 식탁 위에 올려놓은 모양이 영락없이 내가 제일
싫어하는 아줌마 폼새다.)

여 : (우물거리며) 언제 들어 올거야?
남 : 몰라... 저녁도 먹고 들어올지...
여 : 나 혼자 심심하잖아. 빨리 들어와.
남 : 애들한테 전화해 보든가....
여 : (물 한잔 마시고) 애들 뭐... 내가 전화하면 받아주기나 해?
엄마 나 바쁘니까 끊어. 이 소리 하기 바쁘지.
남 : 친구들 만나든가 그럼!
여 : 내가 일요일 날 만날 친구가 어딨어?

* 밥 긁어서 먹는 소리.......

(그렇다. 아내에게는 일요일에 만날 친구 하나 없다. 아이들 키우고
내 뒷바라지 하느라 그렇게 됐다는 게, 아내의 해묵은 레퍼토리다.
그 얘기 나오기 전에 어서 빨리 여기서 나가야 한다.)

(일단 밖으로 나가서, 나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친구들을 끌어모아
술을 마셨다. 밤 12시가 될 때까지 그렇게 노는 동안, 아내에게 몇
번의 전화가 왔다. 받지 않고 버티다가 마침내는 배터리를 빼 버렸
다.)

* 대문 열고 들어오는 소리.......

(그리고 새벽 1시쯤 난 조심조심 대문을 열고 들어왔다. 아내가 소파
에 웅크리고 누워 있었다. 자나보다 생각하고 조용히 욕실로 향하는
데.......)

여 : (아픈 듯) 어디 갔다 이제 와?
남 : 어. 친구들이랑 술 한잔.... 어디 아파?
여 : 낮에 비빔밥 먹은 게 얹혔나봐. 약 좀 사오라고 그렇게 전화했는데
받지도 않고...
남 : 아... 배터리가 떨어졌어.
여 : 손이라도 좀 따줘.
남 : 그러게... 그렇게 먹어대더라니... 좀 천천히 못 먹냐?
여 : 버릇이 돼서 그렇지 뭐... 맨날 집안일 하다 보면, 그냥 대강 빨리
먹고 치우고... 이랬던 게...

(어깨에서 손으로 피를 몰아서 손끝을 바늘로 땄다. 아내의 어깨가
어느새 많이 말라 있었다.)

(다음날, 회식이 있어, 또 늦은 밤 집으로 들어가게 됐다.)

* 문 열고 들어오는 소리.......

(그런데 아내가 또 소파에서 웅크린 자세로 엎드려 있다.)

남 : 여보... 들어가서 자.
여 : 여보... 나 배가 또 안 좋으네.
남 : 체한 게 아직 안 내려갔나?
여 : 그런가봐. 소화제 먹었는데도 계속 그래.
남 : 손 이리 내봐.





(아내의 손끝은 상처 투성이였다.)

남 : 이거 왜 이래? 당신이 손 땄어?
여 : 어. 너무 답답해서...
남 : (버럭) 이 사람아! 병원을 갔어야지! 왜 이렇게 미련하냐?

(나도 모르게 소리를 버럭 질렀다. 여느 때 같으면, 마누라한테 미련
하냐는 말이 뭐냐며 대들만도 한데, 아내는 그럴 힘도 없는 모양이었
다. 그냥 엎드린 채, 가쁜 숨을 몰아쉬기만 했다. 난 갑자기 마음이
다급해졌다. 아내를 업고 뛰기 시작했다.)

* 응급실 소음소리.......

여 : (속삭) 여보. 병원 오니까, 괜찮은 거 있지.
남 : 가만 있어봐. 검사 받아야 되니까.
여 : 아니... 진짜 말짱해. 아까 잠깐 그렇게 아팠나봐.
남 : 온 김에 검사 받고 가.
여 : 뭐하러 그래~ 응급실 얼마나 비싼데~ 내일 병원 문 열면,
가서 검사 받을게.
남 :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여 : 가자니까. 완전 바가지야.

(잡을 틈도 없이, 아내는 먼저 일어나 나간다. 나도 머쓱하게 아내를
따라 나온다. 하긴 아내의 말처럼 응급실은 보통 진료비보다 훨씬
비싸다.)

* 거리 소음 + 걷는 소리.......

남 : 진짜 괜찮아?
여 : 응. 나 학교 다닐 때도, 시험 보기 전날이면, 배 아프고 그랬다?
그런데 병원만 딱 오면, 배가 안 아픈 거야. 그게 다 신경성이라
그런가봐.
남 : 그러게, 사람 놀래키고 그래~~ 아프면 바로바로 병원 가고 그래.
여 : 어머~ 당신 놀랬어? 어유~ 그래도 홀아비 되긴 싫었나봐?
남 : 싫긴 뭐가 싫으냐? 홀아비 되면, 젊은 마누라도 새로 들이고 좋지.
여 : 내가 말을 말아야지...

* 걷는 소리.......

(참 오래전부터 내 곁에서 이렇게 함께 걸어왔던 아내.
그녀와 아주 오랜만에... 함께 길을 걸어본다.)

(다음날 병원에 다녀온 아내는, 회사 앞에서 내게 전화를 걸었다.)

여 : 난데, 우리 점심 먹을까?
남 : 바쁜데...
여 : 회사 앞까지 왔는데?
남 : 그래. 알았다. 병원은 갔다 왔어?
여 : 어. 신경성 위염이래. 남편이 속썩이냐고 물어보더라.
의사선생님이.......
남 : 나만큼 잘하는 남편 있으면 나와 보라 그래. 뭐 먹고 싶어?
여 : 죽 먹자. 요즘 좋은 죽집 많다며? 그런 데 가서 우아하게 먹어보고
싶다.

* 죽 떠먹는 소리.......

남 : 여기 괜찮지?
여 : 횟집에서 죽도 파네?
남 : 어. 우리 회식할 때 자주 오는 데야.
여 : 그런데 너무 비싸다. 죽 한 그릇에 만 오천 원씩이나 해?
태어나서 이렇게 비싼 죽은 처음 먹어보네.

* 바닥까지 긁어먹는 소리.......

(갑자기 열심히 죽을 먹는 아내가 안쓰러워 보였다. 만 오천 원짜리
죽 한 그릇이 아까워, 그릇 밑바닥까지 싹싹 긁어먹는 아내... 난 몇
십만 원짜리 술도 아무렇지 않게 먹는데... 내 아내는 태어나 이렇게
비싼 죽을 처음 먹어 본단다. 그동안 내가 뭘 하고 살았나 생각이
들었다.)



여 : 여보, 할 말이 있는데.
남 : 어, 얘기해.
여 : 추석 때 있잖아. 친정부터 가면 안 될까?
남 : 왜 또 그래~ 어머니 성격 알면서~
여 : 그러게. 30년 넘게 어머니 성격 아니까, 명절 때마다 당신 집부터
갔잖아?
남 : 명절 때 시댁부터 가는 건, 당연한 거야.
여 : 당신 집은 오남매야. 우리 집은 오빠랑 나밖에 없잖아.
엄마가 얼마나 외로워하시는데.......
남 : 추석 끝나고 가면 되잖아.
여 : 어머니도, 당신도 웃겨. 당신!
남 : 여보.... 왜 이래. 새삼스럽게.
여 : 그럼 이렇게 해. 추석 때 당신은 당신 집 가. 난 우리 집 갈 거야.
남 : 어머니가 가만 계시겠어?
여 : 안계시면 어떡 할 건데? 나도 할 만큼 했어. 맘대로 하라 그래.
남 : 당신, 오늘 좀 이상하다.
여 : 30년 동안, 그만큼 이기적으로 부려먹었으면 됐잖아.
내가 이정도 얘기하는 것도, 그렇게 이상해?

(큰소리친 대로, 아내는 추석이 되자, 짐을 몽땅 싸서 친정으로
가 버렸다. 나 혼자 고향집으로 내려가자, 어머니는 노발대발하시며,
세상천지에 며느리가 이러는 법은 없다고 난리를 치셨다. 지난 30년
동안 한번도 없었던 일이니, 이번만큼은 노엽게 생각하지 마시라고
말씀드렸지만, 오히려 마누라 편든다며, 내게도 잔소리를 늘어놓셨
다. 여동생은 여동생대로 제 새언니 흉을 보면서, 무슨 며느리가 그렇
게 제멋대로냐고 했다. 자기는 임신을 핑계로, 추석 전부터 우리집에
와서 쉬고 있으면서, 제 새언니가 친정에 간 건, 그렇게 못마땅한가
보다. 아내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 보니, 우리 가족이지만, 하는 말마
다 행동마다 참 얄미울 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혼하고 처음. 아내가 없는 명절을 보냈다.)

* 문 탕 열고 들어오는 + 클래식 소리.......

(집으로 돌아오자, 아내가 태연히 앉아서, 책을 보고 있었다.
여유롭게 클래식 음악까지 틀어놓고 말이다.)

남 : 당신, 지금 뭐 하는 거야?

* 음악 탁 끄는(쇼팽의 이별곡) 소리.......

여 : 음악 들으면서 책 보잖아. 왜?
남 : 제정신이야? 어머니 얼마나 화나셨는지 알면서,
명절 내내 전화 한 통화 안해?
여 : 어머니 목소리 별로 듣고 싶지 않았어. 간만에 좋은 기분,
망칠 필요 없잖아.
남 : 뭐??
여 : 가끔 뉴스에서 주부우울증으로 투신자살하는 여자들 얘기 들으면,
생각했었어. 남은 가족들은 어쩌라고 저랬을까...
남 : 지금 그 얘기가 왜 나와?
여 : 그런데, 나 이제 이해가 돼. 그 여자들은 남은 가족들이 아무렇지도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죽음을 택했을 거야.
남 : 그게 말이 돼?
여 : 내가 지금 없어져도, 당신도 애들도 어머님도 사는데 아무 지장 없
을 거야. 처음엔 조금 슬프겠지만, 금방 잊을 거야!
남 : ..... 여보?!.....

여 : (울며) 여보. 나 명절 때 친정에 가 있었던 거 아니야.
나, 병원에 입원해서 정밀 검사 받았어. 당신이 한번 전화만 해봤어
도 금방 알 수 있었을 거야. 당신이 그렇게 해주길 바랬어. 그래서,
내가 어디로 갔을까 놀라서 나를 찾아주길 바랬어. 침대에 혼자 누워
서 당신이 헐레벌떡 나타나 주면, 뭐라고 하면서 안길까... 혼자 상상
했었어. 그런데, 당신 끝내 안 나타나더라. 끝내 나 혼자 두더라.



(아내의 병은 가벼운 위염이 아니었던 것이다. 다음날 나와 아내는
함께 병원으로 향했다. 검사 결과에 대해 얘기를 듣기 위해서였다.
가는 내내 아내는 무거운 얼굴로 아무 말이 없었다.)

남 : 죽으러 가냐?
여 : 무슨 말을 그렇게 해?
남 : 요즘 위암? 아무것도 아니야. 요즘은 다 고쳐.
여 : 그래. 누가 뭐래.
남 : 악성도 다 고친다구. 내 친구 차교수 알지? 그 친구도 위암3기였
는데, 멀쩡하잖아. 요샌 아무 것도 아니야 그런 거! 진짜 아무 것도
아니라구!!!

(누구를 위로하기 위해 큰소리를 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아내를 안
심시키기 위한 건지, 나 자신을 안심시키기 위한 건지... 큰 소리 치
면서도 운전대 잡은 손에 땀이 흥건하게 고였다. 그러면서도 난 끝까
지 중얼거렸다.)

남 : 암? 쳇! 그런 거 아무 것도 아니야. 아무 것도...

(난 의사의 입을 멍하게 바라보고 있다. 저 사람이 지금 뭐라고 말하
고 있는 건가, 내 아내가 위암이라고? 전이될 대로 전이가 돼서, 더
이상 손을 쓸 수가 없다고...수술도 하기 어려운 상태니 마음의 준비
를 하시라고.... 가고 싶은 데 있다고 하면 데려가 주고, 먹고 싶은
거 있다고 하면 먹게 해 주라고.... 삼 개월 정도 시간이 있다고....
지금, 그렇게 말하고 있는가. 자기가 뭔데. 자기가 하나님인가.
자기가 남은 시간을 어떻게 아나. 내 아내가 내 곁에서 3개월을
살지, 3년을 살지, 30년을 살지 어떻게 알고....
저렇게 함부로 말을 한단 말인가. 따지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멱살이라도 잡고, 입 함부로 놀리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난 아무 것도 하지 못한 채, 그저 의사의 입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아내와 함께 병원을 나왔다. 유난히 가을 햇살이 눈부시게 맑았다.)

여 : ...... 여보!!......

(아내의 음성이 조용히 귓가에 내려 앉는다. 아내가 살포시 팔짱을
끼고, 내 어깨에 고개를 기댄다. 난 아내의 얼굴을 바라볼 수가 없
다. 지금 그녀를 보면, 절망으로 가득한 내 얼굴을 보여주게 될 것이
다. 그러긴 싫었다.)

여 : 여보....
남 : (무뚝뚝) 왜!
여 : ...........미안해.
남 : 미안하긴 뭐가 미안해. 내가 아까 말했지? 차교수도 처음에 병원
갔을 때, 똑같이 말했대. 차교수도 3개월, 아니 2개월 산다 그랬대!
그런데 지금 봐. 멀쩡하게 다니잖아. 그 친구가 나보다 힘도 더 세고
더 튼튼해! 의사 자식들이 하는 말, 저거... 다 뻥이야!
사람 겁주고... 어? 겁줘서 돈 뜯어낼라고 하는 소리야!
믿지 마, 저런 말!!

(나는 바보다. 끝까지 아내 앞에선 강한 모습만 보여주고 싶어서 큰
소리 치고 있다. 하지만 난 지금 너무 무섭다. 아내가 잡고 있는 내
손이 덜덜 떨릴 정도로 너무너무 겁나고 무섭다. 아내의 따뜻한 손
이 내손을 꼭, 더 꼭 잡아준다.)



* 엘리베이터 띵 올라가는 소리.......

(집까지 오는 동안 우리는 서로 한마디도 할 수가 없었다. 주위에서
누가 암에 걸렸다, 누구 부인이 죽었다.. 이런 얘기 많이 듣는 나이
가 됐지만, 그런 일이 내게 닥칠 거라고는 한번도 생각하지 못했다.
엘리베이터에 탄 아내를 보며, 앞으로 나 혼자 이 엘리베이터를 타
고 집에 돌아가야 한다면 어떨까를 생각했다. 문을 열었을 때, 펑퍼
짐한 바지를 입은 아내가 없다면, 방걸레질을 하는 아내가 없다면,
양푼에 밥을 비벼먹는 아내가 없다면, 술 좀 그만마시라고 잔소리해
주는 아내가 없다면, 나는 어떡해야 할까를 생각했다. 처음으로 우
리 집으로 장만한 이 아파트에는 아내의 손길이 고스란히 묻어 있는
곳이다.)

* 대문 열고 들어오는 소리.......

여 : 여보, 우리 이사갈까?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아내가 말했다.)

여 : 여기 우리 둘이 살기에는 너무 넓잖아?
남 : 됐어. 난 여기가 좋아.
여 : 아니야. 너무 낡았어. 이 집 팔고 조금 작은 평수, 새집으로 이사
가면 좋잖아.
남 : 됐다고 하잖아.
여 : 이 집이 당신 괴롭힐 거라고 생각하니까, 이 집...
정말 꼴도 보기 싫다.

(아내는 함께 아이들을 보러 가자고 했다. 아이들에게는 아무 말도
말아달라는 부탁과 함께. 서울에서 공부하고 있는 아이들은, 갑자기
들이닥친 부모가 그리 반갑지만은 않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아내는
살갑지도 않은 아이들의 손을 잡고, 공부에 관해, 건강에 관해, 백번
도 넘게 해온 소리들을 해대고 있다. 아이들의 표정에 짜증이 가득한
대도, 아내는 그런 아이들의 얼굴을 사랑스럽게 바라보고만 있다.
난 더 이상 그 얼굴을 보고 있을 수 없어서 밖으로 나왔다.)

* 담배 불 켜는 소리.......

여 : 또... 또 담배....
남 : 또... 잔소리.... 그러니까 애들이 싫어하지.
여 : 여보, 집에 내려가기 전에.. 어디 코스모스 많이 펴 있는 데
들렀다 갈까?
남 : 코스모스?
여 : 그냥... 그러고 싶네. 꽃 많이 펴 있는 데 가서, 꽃도 보고,
당신이랑 걷기도 하고....

(아내는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 이런 걸 해보고 싶었나보다.
비싼 걸 먹고, 비싼 걸 입어보는 대신, 그냥 아이들 얼굴을 보고,
꽃이 피어 있는 길을 나와 함께 걷고.)

여 : 당신, 바쁘면 그냥 가고...
남 : 아니야. 가자.

* 바람부는 + 갈대숲 일렁이는 소리.......

(코스모스가 들판 가득 피어있는 곳으로 왔다. 아내에게 조금
두꺼운 스웨터를 입히고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여 : 여보, 나 당신한테 할 말 있어.
남 : 뭔데?
여 : 우리 적금, 올 말에 타는 거 말고, 또 있어.
남 : 뭐?
여 : 내년 4월에 탈 거야. 2천만원 짜린데, 3년 부은 거야. 통장,
싱크대 두 번째 서랍 안에 있어. 그리구... 나 생명보험도 들었거든.
재작년에 친구가 하도 들라고 해서 들었는데, 잘했지 뭐.
그거 꼭 확인해 보고.......
남 : 당신 정말...
여 : 그리고 부탁 하나만 할게. 올해 적금 타면, 우리 엄마 한 이백만원
만 드려. 엄마 이가 안좋으신데, 틀니 하셔야 되거든.
당신도 알다시피, 우리 오빠가 능력이 안되잖아. 부탁해.

(난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고 말았다. 아내가 당황스러워하는 걸
알면서도, 소리내어... 엉엉..... 눈물을 흘리며 울고 말았다.
이런 아내를 떠나 보내고... 어떻게 살아갈까....)



* 문 여는 소리.......

(다시 집으로 돌아왔을 때, 난 깜짝 놀랐다. 집안에는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침대와 소파 식탁 정도만이, 모든 것이 빠져나간
자리에, 오도카니 남아 있었다.)

남 :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여 : 내가.. 오빠한테 부탁해서 이사 좀 해달라 그랬어.
남 : 뭐?
여 : 오빠가 동네 가르쳐 줄 거야. 여보, 나 떠나고 나면 거기 가서 살아.
남 : 당신 정말 왜 이래!! 그럴 거면, 당신이랑 같이 가.
여 : 아니야. 난 새집 안들어 갈래. 거기선 당신이 새 출발해야지.
남 : 당신은, 내가 정말 당신 잊길 바래?
여 : ......솔직히 말하면 아닌데... 그렇다고, 당신이 나 떠나고 나서,
청승 떨면서 사는 건, 더 싫어.

(텅 비어 있는 집의 한 구석에, 우리 부부가 앉아 있다. 베란다 사이
로 스며 들어오는 햇살을 맞으며. 아내가 떠나고 난 내 삶은, 지금
이 빈집처럼 스산할 거라는 걸 안다.)

* 풀벌레 소리.......

(침대에 나란히 누웠다. 아내가 내 손을 잡는다. 요즘 들어 아내는
내 손을 잡는 걸 좋아한다.)

여 : 여보, 30년 전에 당신이 프로포즈 하면서 했던 말 생각나?
남 : 내가 뭐라 그랬는데....
여 : 사랑한다 어쩐다 그런 말, 닭살 맞아서 질색이라 그랬잖아?
남 : 그랬나..
여 : 그 전에도 그 후로도, 당신이 나보고 사랑한다 그런 적 한 번도
없는데, 그거 알지?
남 : 그랬나...
여 : 어쩔 땐 그런 소리 듣고 싶기도 하더라.
남 : ..... 자!.....

(아내는 금방 잠이 들었다. 그런 아내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나도 깜박 잠이 들었다. 일어나니 커튼이 뜯어진 창문으로, 아침햇살
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남 : 여보! 우리 오늘 장모님 뵈러 갈까?
여 : .................
남 : 여보. 장모님 틀니... 연말까지 미룰 거 없이, 오늘 가서 해드리자.
여 : ...............

(좋아하며 일어나야 할 아내가 꿈쩍도 하지 않는다.
난 떨리는 손으로 아내를 흔들어 본다.)

남 : 여보.... 장모님이 나 가면, 좋아하실텐데.... 여보, 안 일어나면,
안간다! 여보?!..... 여보!?......


(이제 아내는 웃지도, 기뻐하지도, 잔소리 하지도 않을 것이다.
난 아내 위로 무너지며 속삭였다. 사랑한다고....
어젯밤.... 이 얘기를 해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아!!!! 그렇게, 난, 아내를 보내 버렸다.)

<김기덕이 진행하는 모 방송프로그램에 나왔던 실제 이야기입니다.>



- 출처: 보배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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