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감동에 북받쳐 눈시울이 붉어지게 했던 글인데 우연하게 다시 보게 되어 잊어버리기 전에 저장합니다. 이미 보신 분들도 많을 테고, 아직 못 보신 분들도 계시겠지만, 사랑의 힘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다시 한번 새기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더구나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고 하니 감동이 배가 되는 것 같습니다.
차라도 한잔하시면서 천천히 감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중환자실에서의 작별인사


지금으로부터 5년 전.
내가 진주에서 인턴으로 근무할 때의 이야기이다.


공사장에서 추락사고로 뇌를 다친
26살의 한 젊은이가 새벽에 응급실로 실려왔다
이미 그의 얼굴과 머리는 심하게 손상되어
원래 모습을 전혀 알아볼 수 없었고
의식은 완전히 잃은 후였다

서둘러 최대한의 응급조치를 했으나
살 가망은 거의 없을 것 같았다.

이미 식물인간이 된 상태나 마찬가지인 그가
호흡기를 달고 중환자실에 누워있는 그날 아침,
나는 착잡한 심정으로 그를 지켜보았다.

심전도를 체크하는 기계 쪽으로 시선을 돌리는 순간
나의 가슴은 무겁게 가라앉았다.

규칙적이고도 정상적인 심장 박동을 나타내던
ECG(심전도) 곡선이
갑자기 웨이브 파동(V-tach)으로 바뀌었던 것이다.

힘차고 반복적인 정상적인 인간의 심장박동에서
점차 약해지며 그 힘을 잃어가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었으며
그것은 곧 죽음이 가까이 옴을 의미했다.

보통 이러한 ECG 곡선이 나타난 이후
10분 이상을 살아있는 이를 나는 본 적이 없었다.

그의 운명이 목전에 다가왔음을 느낀 나는
중환자실을 나와서 기다리고 있는 가족들에게
환자가 운명할 때가 되었으니 와서 임종을
지켜보라고 일렀다.

이미 가족들은 환자에 대한 어떠한 조치
(응급 심폐소생술)도 포기한 채
그의 죽음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었던 상황이었다.

젊은이의 부모님과 일가친척인 듯한
몇몇 사람들이 슬피 울며
이미 시체나 다름없이 누워있는 그에게
마지막 작별을 고하는 모습을 보며
나는 무거운 마음으로 중환자실을 나왔다.

간호사에게는 심전도 파동이 멈추면
곧바로 영안실로 옮기라고 일러두었다.

다른 환자를 보고 잠시 후 다시 그 중환자실을 지나치면서
나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1시간이 지난 아직도 그의 심장 박동이
느린 웨이브 파동 ECG를 그리면서 살아있는 것이었다

이런 경우를 나는 그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본 적이 없었다.
정말 신기하게 생각되면서도 쉽게 믿을 수가 없었다.

그날 오후는 쏟아지는 응급 환자들을 돌보느라
더 이상은 그에 대해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응급실은 거의 매일이 전장의 야전병원 같은 분위기였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자는 둥 마는 둥 그날 밤을 보냈다.

다음날 아침, 나는 왠지 갑자기 생각이 들어
다시 그 중환자실을 가보았다.
물론 지금쯤은 아무도 없는 빈 침대이거나
다른 환자가 누워 있으리란 당연한 생각으로였지만
왠지 그의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음은
스스로도 부정할 수 없었다.

방에 들어선 순간
나는 다시 한번 나의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직도 그가 있었다...

더없이 나약하지만 끊이지 않는
ECG 곡선을 그리며
그의 영혼은 아직 그의 몸을 떠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을 본 나는 무언가를 느꼈다.
왠지 이 세상에서 그가 쉽게 떠나지 못할
그 어떤 이유라도 있는 것일까.
이것은 과학적, 의학적 상식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 경우였다.

나는 의학적 지식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그 이상의 어떤 존재를
그 순간 무의식중에 감지했던 것 같다.

하루가 다시 그렇게 지나고
그의 심전도가 웨이브 파동을 그린지 장장 이틀이 지났다.
다음날 아침, 나는 다시 중환자실에 가보았다.

그의 신체는 죽은 것과 다름없었지만
영혼은 어떠한 이유인지는 몰라도
아직까지 더없이 미약하게나마 이 세상에
오래도록 머물고 있었다.

심전도를 나타내는 모니터 화면이 그 상황을 보여주고 있었고
나의 예사롭지 않은 느낌 역시 그것을 뒷받침해 주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한 젊은 여인이 중환자실로 들어왔다.
이제까지 보호자 중에 없었는데,
마치 멀리서 갑작스런 연락을 받고 급하게 온 듯했다.

젊은이의 애인인 듯했는데 마치 넋이 나간 사람처럼
제대로 환자를 쳐다보지도 못하고 창백한 얼굴로
금방이라도 바닥에 쓰러질 것만 같았다.

그의 곁으로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게
나는 옆으로 비켜주었다.
젊은 여인은 말없이 눈물을 흘리며 가까스로 침대 옆에 섰다.

바로 그 순간...
갑자기 그의 심전도 파동이 멈추었다.
모니터 화면에서 끊임없이 지속되던
웨이브 파동이 한순간 사라지고
마치 전원이 꺼진 것 같은 한줄기 직선만이 화면에 나타났다.

이틀간 미약하게나마 뛰어왔던 그의 심장이
바로 그때 멈춘 것이었다.
내 가슴은 순간 서늘해지면서 왠지 모를
거대한 느낌에 사로잡혔다.

이젠 정말로 이 세상을 떠난 그와
그이 곁에 남겨진 여인을 두고 나는 중환자실을 빠져나왔다.

그의 임종 소식을 전하고
나는 보호자 중의 한 사람에게
방금 온 그녀가 누구인지 물어보았다.

내게는 그녀가 그이 삶을 오늘까지,
정말 믿기지 않을 정도로 연장시킨 어떤 존재로까지
여겨졌던 것이다.

그녀는...
결혼한 지 3개월에 접어드는 그의 부인이었고
뱃속에 아기를 임신 중이었다.

놀라움과 마음속 깊숙이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의 파도가 밀려옴을 느끼며
나는 그 순간 내가 해야 할 행동이 무엇인지를 깨달았다.

그녀가 나오기를 기다렸다가 나는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이야기해 주었다...

세상을 떠나기 전에 당신과 뱃속의 아기를 만나기 위해
그가 얼마나 그 오랫동안 죽음과 삶의 경계에서
사투를 벌이면서 오랜 시간을 기다렸는지...
얼마나 힘겹고 가슴 아픈 영혼의 기다림이었는지...

그리고 그것은 부인과 그의 아기에게 전하는
그의 이 세상 마지막 메세지라고...

그것은 바로 가족 사랑의 작별 인사라고...

듣고 있는 그녀의 눈에서 넘치는 눈물을 바라보며
나는 두려움과 함께 어떤 한 경외심까지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애절하고 아름다운 사랑을 간직한 한 영혼이
바로 우리 곁을 떠나는 순간이었다.

나는 영혼의 존재를 믿는다...
존재를 믿을 뿐 아니라 생생히 느꼈고 경험했다.

그리고 그 존재를 이끌어주는 가장 큰 힘이
인간의 가족사랑, 부부사랑, 자식사랑이라는 것 역시...


- 출처: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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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무식한 부부


내 남편은 건설현장 근로자다.
말로는 다들 직업에 귀천이 없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는 엄연히 직업에 귀천이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세칭 노가다라는 직업을 가진 남자를
남편으로 둔 나는
그가 하는 일을 떳떳이 밝히지 못하고
어쩌다 친정엘 가도 풀이 죽는데,
"남들은 내 남편을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마음에 가끔 길을 가다가도

신축 중인 건설 현장을 보게 되면
걸음을 멈추고
"내 남편도 저렇케 일하겠지" 하는 생각에
눈시울을 적시곤 한다.

며칠 전
남편이 좋아하는 우렁이를 사려고 시장엘 갔다.
우렁이를 사고 막 돌아서려는데
인도네시아에서 온듯한 남자 둘이서
토시를 가르키면서

"이거 얼마예요?"
하고 서투른 우리말로 물어 보는게 아닌가.

아줌마가 천원이라고 답하자

그 두사람은 자기네 말로 뭐라 하면서
고개를 끄덕이는게 보였다
아마 비싸다는 표정인 거 같았다.

그 순간 나는 선량한 두 사람을 보고
이국 땅에 와 천대 받으면서 일하는
외국 근로자의 입장을 생각했고
또한 힘들게 일하는 내 남편이
잠깐이나마 그립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오늘은 햇빛이 따갑게 내리길래
널었던 이불을 걷으로
옥상에 올라 갔다가 무심코하늘을 보는데
"화인건설" 이라고 쓰여진 곤돌라가 눈에 띄었다.

언젠가 남편이 일하는 곳을 알려준 적이 있었다

가보지는 않았지만
남편이 일하고 있는 현장인거 같아
나는 열심히 그 곤돌라 밑으로
남편 옷 색깔을 찾아 보았다.

아!
조그맣게 남편이 보였다.
위험한 난간에서 나무 기둥을 붙들고
왔다갔다 하면서 망치로 못을 치고 있었다.
탕!탕! 못치는 소리도 들려왔다

그 순간 나? 울고 말았다.
왜 내 남편은 더운 날
저렇게 땡볕에서 일을 해야만
처 자식을 먹여 살릴 수 있을까.
꼭 저렇게 힘들게 일해야 하나

내려오는 계단에서
이불을 싸안고 오다가 그렁거리는
눈물 때문에 넘어 질 뻔 했다.

저녁을 먹고 남편에게
"다리 주물러 드릴께요 이쪽으로 누우세요"
했더니 눈이 동그래 졌다.
별일 다 보겠다는 표정이다.

나는 다리를 주무르면서
"당신 오늘 6층에서 일했죠"
"어, 어떻게 알았어?" 했다.

"오늘 이불 걷다가 봤어요,
우리 옥상에서 바라보면 왼쪽 끝에서 일했죠?" 했더니
"응" 하고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마도 자기가 고생하는 걸
내가 본게 못마땅한 것 같았다.

"냉커피 한잔 드릴까요?" 했더니
"아 타주면 잘먹지" 한다

사실 남편이
저녁 늦게 커피를 부탁하면 거절 했었다.

그다지 커피를 즐기는 편이 아니어서
밤에 커피를마시면
카페인 때문에 잠을 못자는 편이기 때문이다.

언제인가 밤에 커피를 마신 뒤
새벽까지 뒤척이더니
일 나갔다가 어지럽다고
그냥 집에 온 적이 있은 뒤부터
나는 되도록 늦은 커피는 타주지 않는다.

내마음을 아는 남편은
"내일 일 못 나가면 어쩌려고 커피를 타주지"했다.

"아유 뭐 어때요 하루 쉬면 되지 뭐" 했더니
남편은 빙긋 웃으면서
"우리 블랙 커피 한번 마셔 볼까?"
하고 장난기 어린 표정을 지었다.

"테레비 같은 데서
블랙커피 마시는 사람들 보니까 유식해 보이더라"

나는 웃음을 참으면서
정말로 설탕과 프림을 빼고
남편에게블랙 커피를 내밀었더니
한모금 마신 남편은 얼굴을 찡그리면서

"아우,무식한게 차라리 낫겠다.
못 마시겠다.우리 무식하고 말자"
하는게 아닌가.

하긴 블랙커피를 마신다고 모두 유식하면
무식한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우리 부부는 무식할 정도로 큰 소리로 웃었다.

잠자리에 누운 남편은
"당신 이번에 돈 나오면 바지 하나 사 입어.

거 왜 당신은 멋을 안부리는 거야?
옆집 진영이 엄마 같이
야들 야들한 바지 하나 사입어"했다.

"참 누군 못 사 입어서 안 입는줄 아세요?
당신 땡볕에서 땀 흘리며 번돈으로
어떻게 비싼 옷을 사 입어요?" 했더니

"다 당신하고 윤정이 위해일하는데 뭘 그래.
이번 달에 사입어 파마도 좀 하고"
나는 그만 목이 메었다.

그런걸 행복이라고 말해도 좋으리라.

지체 높으신 사모님 소릴 못들어도.
어떤 비싼 보석 같은게 아니 더라도
잠깐씩 이렇게 느껴 지는 걸
행복이라고 말해도 되지 않을까?

가끔 남편은
돈 많은 부모 못 만나 배우지 못해서
천대 받는 세상이 원망 스럽다고
울분을 토한 적이 있다.

그런 남편을 볼 때마다 나 또한
남편의 직업에 열등감을 느끼기도 했지만
이렇게 오늘 같이 잠깐씩 느끼는 감사함으로
남편 직업에 대한 회의를 잊고
깊은 행복감에 젖어든다.

아, 내일 남편의 점심 반찬을
무엇으로 해 드릴까?

자칭 무식한 우리 부부의 초여름 밤은
시원하게 깊어간다.


- 동서커피 문학상 입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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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이런 부류의 글을 카테고리까지 만들어 놓고 모으는 이유는, 삶에 부대껴 헐떡이다 지쳐 가끔 뒤돌아 보면 너무 삭막하게 사는 저 자신이 문득 불쌍하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또한, 가슴이 찡한 감동을 주는 글을 읽고 나면 제 나름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캡처를 하지 못해 놓친 글이 많습니다만 앞으로는 저작권에 문제가 없는 한 제 블로그에도 그러한 글들이 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두고 싶습니다.


참, 아시죠? 이런 글 읽을 때는 컴퓨터 앞의 마우스를 좌클릭, 우클릭하던 버릇은 잠시 억제하시고 차분하게 보셔야 한다는 것을요. ^^





신랑이 늦둥이라 저와 나이 차가 50년 넘게 나시는 어머님...

저 시집오고 5년만에 치매에 걸리셔서

저 혼자 4년간 똥오줌 받아내고, 잘 씻지도 못하고,

딸내미 얼굴도 못 보고, 매일 환자식 먹고,

간이침대에 쪼그려 잠들고,

4년간 남편 품에 단 한 번도 잠들지 못했고,

힘이 없으셔서 변을 못 누실 땐

제 손가락으로 파내는 일도 거의 매일이었지만

안 힘들다고, 평생 이 짓 해도 좋으니 살아만 계시라고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정신이 멀쩡하셨던 그 5년간 베풀어주신 사랑 덕분이었습니다.

제 나이 33살 먹도록 그렇게 선하고 지혜롭고 어진 이를

본적이 없습니다.

알콜중독으로 정신치료를 받고 계시는 아버지...

그런 아버지를 견디다 못해 제가 10살 때 집 나가서 소식 없는 엄마...

상습절도로 경찰서 들락날락하던 오빠...

그밑에서 매일 맞고, 울며 자란 저를 무슨 공주님인 줄 착각하는 신랑과



신랑에게 모든 이야기를 듣고는 눈물 글썽이며


한시라도 빨리 데려오고 싶다고 2천만원짜리 통장을 내어주시며,

어디 나라에서는 남의집 귀한 딸 데리고 올 때 소 팔고 집 팔아

지참금 주고 데려 온다는데, 부족하지만 받으라고...

그돈으로 하고 싶은 혼수, 사고 싶은 거 사서 시집오라

하셨던 어머님...

부모 정 모르고 큰 저는 그런 어머님께 반해,

신랑이 독립해 살고있던 아파트 일부러 처분하고

어머님댁 들어가서 셋이 살게 되었습니다.

신랑 10살도 되기 전에 과부 되어, 자식 다섯을 키우시면서도

평생을 자식들에게조차 언성 한 번 높이신 적이 없다는 어머님...

50 넘은 아주버님께서 평생 어머니 화내시는 걸 본적이

없다 하시네요.

바쁜 명절날 돕진 못할망정 튀김 위에 설탕 병을 깨트려

튀김도 다 망치고 병도 깬 저에게 1초도 망설임 없이

"아무 소리 말고 있거라" 하시고는

늙으면 죽어야 한다며 당신이 손에 힘이 없어 놓쳤다고

하시던 어머님...

단 거 몸에 안 좋다고 초콜렛 쩝쩝 먹고있는 제 등짝을

때리시면서도 나갔다 들어오실 땐 군것질거리 꼭 사 들고

"공주야~ 엄마 왔다~" 하시던 어머님..

어머님과 신랑과 저. 셋이 삼겹살에 소주 마시다

셋다 술이 과했는지 안 하던 속마음 얘기하다가,

자라온 서러움이 너무 많았던 저는

시어머니 앞에서 꺼이꺼이 울며 술주정을 했는데,

그런 황당한 며느리를 혼내긴 커녕

제 손을 잡으며, 저보다 더 서럽게 우시며,

얼마나 서러웠노, 얼마나 무서웠노..

처음부터 니가 내 딸로 태어났음 오죽 좋았겠나,

내가 더 잘해줄 테니 이제 잊어라..잊어라...하시던 어머님...

명절이나 손님 맞을 때 상 차린 거 치우려면

"아직 다 안 먹었다 방에 가 있어라"하시곤

소리 안 나게 살금살금 그릇 치우고 설거지 하시려다 저에게 들켜

서로 니가 왜 하니, 어머님이 왜 하세요 실랑이 하게 됐었죠...

제가 무슨 그리 귀한 몸이라고..

일 시키기 그저 아까우셔서 벌벌 떠시던 어머님.

치매에 걸려 본인 이름도 나이도 모르시면서도

험한 말씨 한번 안 쓰시고

그저 곱고 귀여운 어린 아이가 되신 어머님...

어느날 저에게 " 아이고 이쁘네~ 뉘 집 딸이고~~" 하시더이다.

그래서 저 웃으면서

"나는 정순X여사님(시어머님 함자십니다) 딸이지요~

할머니는 딸 있어요~?"했더니 "있지~~

서미X(제이름)이 우리 막내딸~ 위로 아들 둘이랑 딸 서이도 있다~"

그때서야 펑펑 울며 깨달았습니다.

이분 마음 속엔 제가, 딸 같은 며느리가 아니라

막내 시누 다음으로 또 하나 낳은 딸이었다는걸...

저에게...

"니가 내 제일 아픈 손가락이다." 하시던 말씀이 진짜였다는 걸...

정신 있으실 때, 어머님께 저는 항상 감사하고 사랑하고

잘하려 노력은 했지만 제가 정말 이분을 진짜 엄마로

여기고 대했는지...,

왜 더 잘하지 못했는지, 왜 사랑하고 고맙단 말을 매일 매일

해 드리진 못했는지...

형편 어렵고 애가 셋이라 병원에 얼굴도 안 비치던 형님..

형님이 돌보신다 해도 사양하고 제가 했어야 당연한 일인데,

왜 엄한 형님을 미워했는지...

말한마디 행동 하나하나가 사무치고 후회되어

혀를 깨물고 싶은 심정이었답니다.

밤 11시쯤,, 소변보셨나 확인하려고 이불 속에 손 넣는데

갑자기 제 손에 만 원짜리 한 장을 쥐여 주시더군요...

"이게 뭐에요?" 했더니 소근소근 귓속말로

"아침에~ 옆에 할매 가고 침대 밑에 있드라~

아무도 몰래 니 맛있는 거 사 묵어래이~" 하시는데 생각해보니

점심 때쯤 큰 아주버님도 왔다 가셨고, 첫째, 둘째 시누도

다녀갔고.. 남편도 퇴근해서 "할머니~ 잘 있으셨어요~?"

(자식들 몰라보셔서 언젠가부터 그리 부릅니다.) 인사하고

집에 들어갔는데...

아침 7시에 퇴원한 할머니가 떨어트린 돈을 주우시곤

당신 자식들에겐 안 주시고 갖고 계시다가 저에게 주신 거였어요.

그리곤 그날 새벽 화장실 다녀왔다 느낌이 이상해

어머님 코에 손을 대보니 돌아가셨더군요...

장례 치르는 동안 제일 바쁘게 움직여야 할 제가

울다 울다 졸도를 세 번 하고 누워 있느라 어머님 가시는 길에도

게으름을 피웠네요...

어머님을 닮아 시집살이가 뭔지 구경도 안 시킨 시아주버님과

시누이 셋. 그리고 남편과 저...

서로 부둥켜안고 서로 위로하며, 어머님 안 슬퍼하시게

우리 우애 좋게 잘살자 약속하며 그렇게 어머님 보내드렸어요..

오늘이 꼭 시어머님 가신지 150일째입니다..

어머님께서 매일 저 좋아하는 초콜렛,사탕을 사 들고 오시던

까만 비닐봉지.

주변에 널리고 널린 까만 비닐봉지만 보면 눈물이 납니다..

어머님이 주신 꼬깃꼬깃한 만 원짜리를 배게 밑에 넣어두고..

매일 어머님 꿈에 나오시면

사랑한다고... 감사하다고 말해 드리려 준비하며 잠듭니다.

다시 태어나면 처음부터 어머님 딸로 태어나길 바라는 건

너무 큰 욕심이겠죠...

부디 저희 어머님 좋은 곳으로 가시길..


다음 생에는 평생 고생 안 하고 평생 남편 사랑 듬뿍 받으며

살으시길 기도해 주세요.


- 출처: 미상




출처가 어디인지 아시는 분은 알려 주시기를 부탁합니다.







"다시는 하얀 와이셔츠를 사지 않을 거예요"
"여보! 이리와 봐!"
"왜요?"
"와이셔츠가 이게 뭐야, 또 하얀색이야?"
"당신은 하얀색이 너무 잘 어울려요."
"그래도 내가 다른 색깔로 사오라고 했잖아!"

한 주가 시작되는 월요일 아침부터 아내에게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하얀 와이셔츠말고 색상있는 와이셔츠로
사오라고 몇 번이고 일렀건만
또다시 하얀 와이셔츠를 사다놓은 것이었습니다.

"이 와이셔츠 다시 가서 바꿔와,"
"미안해요. 유행 따라 색깔있는 와이셔츠를
사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당신한테는
하얀색이 잘 어울리는 것 같아서...."
"도대체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듣나, 나 원 참...."



출근은 해야 하는데
몇 달째 계속 하얀색만 입고 가기가 창피했습니다.
한두 번 얘기한 것도 아니고 신랑을 어떻게 보고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죠,

아내는 방바닥에 펼쳐 있는
하얀 와이셔츠를 집어 차곡차곡 개기 시작했습니다.
그 순간 하얀색 와이셔츠의 소매 위로
물방울이 뚝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당신 지금 우는 거야?"
"......."
"신랑 출근하려는데 그렇게 울면 어떡해"
"저..., 이 옷...그냥 입어 주면 안 돼요?"
"왜 그래?"
"아니에요. 어서 출근하세요."

아내는 눈물을 감추지 못했고, 나는 좀 심했나,
아내 어깨를 두드리며 한참을 안아주었습니다.
그리고 아내의 눈물 젖은 하얀 와이셔츠를 입고
조금은 무거운 마음으로 출근을 했습니다.



"삐리릭 삐리릭!"

점심 식사시간, 마지막 숟가락을 놓자마자
휴대폰으로 문자 메시지 하나가 도착했습니다.

"정현주 님께서 보낸 메일이 도착했습니다".

후다닥 사무실로 들어와 확인을 해보니
세 개의 메일이 도착해 있었습니다.
두 개는 광고 메일이고 다른 하나는
조금 전 아내가 보낸 메일 이였습니다.

"아침부터 당신 화나게 해서 미안해요.
아직 당신한테 얘기하지 못한 게 있는데요.
말로 하기가 참 부끄러워 이렇게 메일로 대신해요."

무슨 얘기를 할지 조금은 긴장되고 떨렸습니다.

"여보, 제가 어렸을 때 가장 부러워 했던게
뭔지 아세요?
옆집 빨랫줄에 걸려있는 하얀 와이셔츠였어요.
'우리 아버지도 저런 옷을 입고
회사에 다닌다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 아버지요, 단 한번도...단 한번도...
와이셔츠를 입어보지 못하고 돌아가셨어요.
물론 와이셔츠하고는 거리가 먼 환경미화원이셨지만
줄줄이 셋이나 되는 우리 가족 뒷바라지에
새 옷 한 벌 입어본 적이 없을 정도로
알뜰하고 검소하게 살다가신 분이세요."



지금까지 장인어른에 대해 어떤 언급도 하지 않았던
아내에게 이런 사연이 있었다니...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여보, 그래서 전 당신 만나기 전부터 이런 결심도 했지요."
난 꼭 하얀 와이셔츠를 입을 수 있는 직업을 가진
사람과 결혼해야지.

결국은 제 소원대로 당신과 결혼을 했고
하얀 와이셔츠를 입고 출근하는
당신을 보면 너무 기분이 좋았어요.

그런데 이제는 하얀 와이셔츠를 사지 않을 거예요.
당신이 화내서가 아니에요 이제야 알았거든요.
하얀 와이셔츠를 입어 보지 못한 나의 아버지가
얼마나 자랑스러운 분 인지를요.

늘 조금 굽은 어깨로 거리의 이곳 저곳을
청소하러 다니시는 나의 아버지야말로 하얀
와이셔츠만큼이나 마음이 하얀 분이라는 걸요.



그제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왜 이렇게 아내가 하얀 와이셔츠만 사오는지...,
나는 곧장 휴대폰을 꺼내 아내에게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여보, 나 지금 뭐하고 있는 줄 알아?
아침에 당신이 하얀 와이셔츠 소매에 흘린
눈물자국 위에 입맞춤하고 있다구.
사랑해. 진심으로..."

- 사랑하기에 아름다운 이야기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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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빼기 3은 뭘까요?"
"스님! 퀴즈 하나 낼테니 맞혀 보세요."


지난 여름수련회 때의 일이다..
초등학교 4학년인 한 꼬마가 수수께끼라며
갑자기 문제를 냈다.


"5 빼기 3은 뭘까요?"


한참을 궁리했다.
난센스 문제 같기도 하고 아니면
무슨 의미가 내포되어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별의별 생각을 다한 뒤에 "글쎄.."라고 답했다.

그랬더니 이 꼬마 녀석이 "스님은 바보예요.
이렇게 쉬운 것도 못 맞혀요"하며 깔깔 웃었다.

내가 알려 달라고 하니
과자를 주면 알려 주겠다고 해
과자 한 봉지를 건네주었다.

"굉장히 쉬워요.
5 빼기 3은 2예요." 나는 피식 웃음이 났다.

꼬마는 또 물었다. "그 뜻은 무엇일까요?"

'하! 이건 또 뭐야?'
혼자 중얼거리며 생각에 잠겨 있는데,
그 녀석 하는 말이 걸작이다.

"오(5)해를 타인의 입장에서 세(3)번만 더 생각하면
이(2)해가 된다는 뜻이랍니다."

순간 나는 무릎을 쳤다. "맞아!"

이후 어디에서 법문 요청이 오면 '5 빼기 3'이
나의 단골 메뉴가 됐다.

오해로 인해 얼마나 가슴 아파했던가?
오해로 인해 얼마나 많은 다툼이 있었던가?

이 오해는 어디서 올까? 이해하지 못함에서 오겠지..

이해가 안 되는 건 왜일까?
내 입장에??생각해서겠지.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이해할까?
타인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되겠지.

누가 내게 욕을 할 때는
그럴 만한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어서다.
그 사람의 입장에서
욕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찾아보자.

이해가 되면 분노가 사라진다..
이해가 되면 내가 편해진다.

5 빼기 3은 2!
삶을 새롭게 하는 커다란 힘을 가졌다.

꼬마는 신이 나서 퀴즈를 하나 더 냈다.
"2 더하기 2는요?"

나는 가볍게 알아맞혔다. "4지 뭐니."

"맞았어요. 그럼 그 뜻은요?" 하고 되묻는다.


또 한참을 궁리하다 모른다고 했더니, 그 꼬마는
"이(2)해하고 또 이(2)해하는 게 사(4)랑이래요"
라고 말한 뒤 깔깔대며 뛰어간다.

이 얼마나 멋진 말인가?
'이해하고 또 이해하는 게 사랑이라….'

올여름 땀 흘리며 얻은 가장 큰 보람 중 하나다.
올겨울 여러분도 5 빼기 3으로 마음을 넓히고,
2 더하기 2로 멋진 사랑을 해보면 어떨까
이 글은 제가 자주 가는 동호회의 한 회원분께서 올려주신 글입니다.
실제 이분은 가드너 증후군이라는 병마 때문에 부인과 사별하시고, 딸에게까지 그 병마가 유전되지는 않을지 노심초사하셨습니다.

자식 키우는 부모입장이라면 자식에 대한 걱정은 모두가 공감하리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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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가장 기쁜 날이었습니다.
너무 기뻐 눈물이 흐르고, 잠 못 이루다가 밤늦게 미니홈피(http://www.cyworld.com/han)에 글을 남겼네요.

━━━━━━━━━━━━━━━━━━━━━━━━━━━━━━━━━━━━━━━━━━

여보! 난 오늘부터 편하게 잠들 것 같아.
이 사진처럼 웃고 있는 단우의 미소를 계속해서 지켜줄 수 있으니까...
그토록 기도해왔던 소원이 이루어졌거든.
단우가 태어나기 전부터, 엄밀히 말하자면 우리가 결혼하기 전부터 당신과 함께 기도하던 기도제목이 응답받았어.

엄마의 병이 엄마 세대에서 끝이 나도록 해주십시오.
우리 가계에 더 이상의 저주가 흐르지 않도록 해주십시오.

단우가 자기에게도 발병될 이 병이 단우 평생의 멍에가 되어 살아가진 않을까 싶어 단우 이마에 손을 얹고 기도를 할 때면 항상 먼저 나왔던 그 기도가... 이젠 간구하는 기도가 아니라 감사의 기도로 바뀌었어.

서울대병원 유전자 암연구소에서 검사결과가 나왔어.
아니 검사결과는 나온지 오래됐을텐데 사실 내가 너무 두려워서 차마 그 결과를 알아보러 가질 못했어.
갔다가 쓰러지면 어떻하지? 이걸 나혼자만 비밀로 간직한 채로 살아야할텐데... 여러 생각 때문에 미루고 미루다가 잊고 살까 하다가 그런다고 잊혀질 일이 아닌 것 같아서 물어봤어.

"박은주씨에게 보이던 유전자의 돌연변이가 단우에게는 보이지 않습니다. 아빠의 정상적인 유전자만 물려받았으므로 일반인과 같은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토록 바라던 회신이지만 믿어지지가 않더라...
혹시 다른 사람 샘플을 가지고 잘못 말한게 아닐까? 아니면 날 그냥 위로하려고 그러는게 아닐까 싶어서 몇 번 물어봤는데 정말이야.
꿈이 아니야...

얼마나 기뻤는지 전화를 받고 학교 복도에서 울었어. 기뻐서 이렇게 운게 아마 처음인가봐... (당신과 결혼할 때도 울진 않았는데...ㅎ)
막 가슴이 터질 것만 같고, 소리를 지르고 싶고, 그냥 무릎꿇어 기도만 하고 싶었는데... 내 마음 당신도 알지? 알다 뿐이겠어? 나와 같은 마음이었을텐데...

우리 연애할 때 당신의 병 진단을 받고 막연한 믿음으로 "우리가 결혼해서 아이를 낳아도 유전되지 않을꺼야,
유전되었다 하더라도 20년 넘어서 발병될테니 그 땐 획기적인 치료법이 존재할꺼야." 이렇게 믿으며 결혼하고 단우를 낳고 지내다가 막상 정말 가드너신드롬에 결국 무너지고만 당신이 자꾸 생각나서 솔직히 자신이 없었거든.

이 세상에서 가장 하기 싫은 상상이지만 혹시라도 단우에게 이 일이 생긴다면 내가 과연 그 때도 견뎌낼 수 있을까 생각하면 자다가도 벌떡 깨어 멀쩡히 자고 있는 애 부둥켜 안고 울었던 날이 하루이틀이 아닌데 그 눈물이... 그 기도가... 드디어 이루어졌어. 하루종일 UP된 날 보고 누가 묻더라. 로또 되었냐고...
로또1등 보다 더 귀한 내 딸의 생명을 얻었는데 로또1등이 당첨되었어도 이보다 기쁘진 못할꺼야. 당신이 여기에서 나와 함께 이 소식을 들었으면 내색 않던 당신 마음의 무거움이 조금이라도 가벼워졌을텐데... 아마 이 기쁜 소식에 당신의 병이라도 나은 듯 훨훨 날아다녔을텐데...

이 소식을 듣고 어린이집에 단우 만나자마자 얘기를 해줬더니 뭐가 몬지 모르는 이 녀석은 "엄마 지금은 안 아파요?" 묻는다. ㅎㅎ
내가 엄마처럼 단우는 아프지 않아. 앞으로 그럴 일이 없어. 그랬거든...
오늘같은 날은 강도 당해도 실실 웃으며 돈 다 빼줄 것만 같고, 누가 내 차 박아도 그냥 가세요~ 하며 웃을 것만 같아.

만일 오늘 이 결과가 반대로 나왔다면 누군가 "지난 번에 단우 유전자 검사한다고 한 거 결과 나왔어요?"라고 물었을 때 "아직 결과 안 물어봤어요. 그냥 모르고 지내는게 나을 것 같아요"라고 애써 태연한 척 대답하며 살아야했겠지?
이젠 자기가 그토록 힘들었던 병명이 밝혀지는 것조차 단우에게 짐이 될까봐 쉬쉬했었는데 속시원히 말할 수 있을 것 같아.
어쩌면... 당신이 단우에게까지는 안 가도록 그 짐을 다 지었구나.
그러느라 그리 힘들었구나...



☞ 가드너증후군 [Gardner syndrome]

  • 요약: 대장 용종 외에도 골종양, 연부조직 종양 등이 발생하는 유전병.
  • 본문: 1951년 미국의 의사 E.J.가드너가 처음 보고하였기 때문에 그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 종양 억제역할을 하는 APC 유전자 돌연변이로 인해 발생하며, 상염색체 우성으로 유전한다. 대장 전체에 나타나지만 특히 S상결장 및 직장에 걸쳐서 1㎝ 미만의 선종성 용종이 최소한 100개 이상 나타나는데, 대장 전체 점막을 다 덮을 정도로 많이 발생할 수도 있다. 골종양은 주로 머리·발·턱뼈에 나타나며, 연부조직 종양은 장 사이의 막 또는 복막 뒤쪽에 생긴다. 환자의 50% 정도는 위 또는 십이지장에도 이러한 용종이 나타난다. 이와 함께 점막표피유사낭종, 인대모양종양, 치아이상 등을 동반할 수 있다. 이러한 용종은 20세 이전에 생기며 치료하지 않으면 진행하여 대장암으로 발전한다. 일반적으로 사춘기 이전에는 증세가 나타나지 않다가 20~30대 나이가 되면 설사를 하거나 대변에 피가 섞어서 나오기 시작한다. 이와 동반하여 빈혈을 일으키고, 대변에 점액이 섞여서 나올 수 있으며, 복통 또는 장폐쇄 등을 일으킬 수 있다. 이때 제대로 치료하지 않으면 40대에는 대장암으로 진행한다. 그밖에 췌장암·갑상선암·뇌종양이 발생할 확률도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치료는 대장암이 발생하기 전에 수술을 통해 전체 대장을 절제한다. 이와 함께 경우에 따라서는 직장 전체를 절제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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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하셨습니까?

긴 여운이 남는 글입니다. 유부남들께서는 아내에게 소홀하거나 미안한 일이 있을 때마다 한번씩 읽어 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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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걸레질 하는 소리.......

여 : 아! 발 좀 치워봐.

(지금 허름한 바지를 입고 엉덩이를 들썩이며 방걸레질을 하는 그녀,
아내... 그 모습을 보면서, 나도 만약 그런 질문을 받는다면, 나 역시
아내라고 대답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여 : 점심은 비빔밥 대강 해먹을라 그러는데, 괜찮지?
남 : 또 양푼에 비벼먹자고?
여 : 어, 먹고나서, 베란다 청소 좀 같이 하자. 집안 청소 다 했더니,
힘들어 죽겠어.
남 : 나 점심 약속 있어.
여 : 그런 얘기 없었잖아.
남 : .... 있었어. 깜박하고 말 안한거야. 중식이...
중식이 만나기로 했잖아.
여 : ...그래? 할 수 없지 뭐.

(해외출장 가있는 친구 중식이를 팔아놓고, 중식이한테도 아내에게
도 약간 미안한 마음은 들었지만, 한가로운 일요일, 난 아내와 집에
서 이렇게라도 탈출하고
싶었다.)

(나름대로 근사하게 차려입고 나가려는데, 커다란 양푼에 밥을 비벼
서, 숟가락 가득 입에 넣고 우물거리던 아내가, 나를 본다. 펑퍼짐한
바지에 한쪽 다리를 식탁 위에 올려놓은 모양이 영락없이 내가 제일
싫어하는 아줌마 폼새다.)

여 : (우물거리며) 언제 들어 올거야?
남 : 몰라... 저녁도 먹고 들어올지...
여 : 나 혼자 심심하잖아. 빨리 들어와.
남 : 애들한테 전화해 보든가....
여 : (물 한잔 마시고) 애들 뭐... 내가 전화하면 받아주기나 해?
엄마 나 바쁘니까 끊어. 이 소리 하기 바쁘지.
남 : 친구들 만나든가 그럼!
여 : 내가 일요일 날 만날 친구가 어딨어?

* 밥 긁어서 먹는 소리.......

(그렇다. 아내에게는 일요일에 만날 친구 하나 없다. 아이들 키우고
내 뒷바라지 하느라 그렇게 됐다는 게, 아내의 해묵은 레퍼토리다.
그 얘기 나오기 전에 어서 빨리 여기서 나가야 한다.)

(일단 밖으로 나가서, 나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친구들을 끌어모아
술을 마셨다. 밤 12시가 될 때까지 그렇게 노는 동안, 아내에게 몇
번의 전화가 왔다. 받지 않고 버티다가 마침내는 배터리를 빼 버렸
다.)

* 대문 열고 들어오는 소리.......

(그리고 새벽 1시쯤 난 조심조심 대문을 열고 들어왔다. 아내가 소파
에 웅크리고 누워 있었다. 자나보다 생각하고 조용히 욕실로 향하는
데.......)

여 : (아픈 듯) 어디 갔다 이제 와?
남 : 어. 친구들이랑 술 한잔.... 어디 아파?
여 : 낮에 비빔밥 먹은 게 얹혔나봐. 약 좀 사오라고 그렇게 전화했는데
받지도 않고...
남 : 아... 배터리가 떨어졌어.
여 : 손이라도 좀 따줘.
남 : 그러게... 그렇게 먹어대더라니... 좀 천천히 못 먹냐?
여 : 버릇이 돼서 그렇지 뭐... 맨날 집안일 하다 보면, 그냥 대강 빨리
먹고 치우고... 이랬던 게...

(어깨에서 손으로 피를 몰아서 손끝을 바늘로 땄다. 아내의 어깨가
어느새 많이 말라 있었다.)

(다음날, 회식이 있어, 또 늦은 밤 집으로 들어가게 됐다.)

* 문 열고 들어오는 소리.......

(그런데 아내가 또 소파에서 웅크린 자세로 엎드려 있다.)

남 : 여보... 들어가서 자.
여 : 여보... 나 배가 또 안 좋으네.
남 : 체한 게 아직 안 내려갔나?
여 : 그런가봐. 소화제 먹었는데도 계속 그래.
남 : 손 이리 내봐.





(아내의 손끝은 상처 투성이였다.)

남 : 이거 왜 이래? 당신이 손 땄어?
여 : 어. 너무 답답해서...
남 : (버럭) 이 사람아! 병원을 갔어야지! 왜 이렇게 미련하냐?

(나도 모르게 소리를 버럭 질렀다. 여느 때 같으면, 마누라한테 미련
하냐는 말이 뭐냐며 대들만도 한데, 아내는 그럴 힘도 없는 모양이었
다. 그냥 엎드린 채, 가쁜 숨을 몰아쉬기만 했다. 난 갑자기 마음이
다급해졌다. 아내를 업고 뛰기 시작했다.)

* 응급실 소음소리.......

여 : (속삭) 여보. 병원 오니까, 괜찮은 거 있지.
남 : 가만 있어봐. 검사 받아야 되니까.
여 : 아니... 진짜 말짱해. 아까 잠깐 그렇게 아팠나봐.
남 : 온 김에 검사 받고 가.
여 : 뭐하러 그래~ 응급실 얼마나 비싼데~ 내일 병원 문 열면,
가서 검사 받을게.
남 :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여 : 가자니까. 완전 바가지야.

(잡을 틈도 없이, 아내는 먼저 일어나 나간다. 나도 머쓱하게 아내를
따라 나온다. 하긴 아내의 말처럼 응급실은 보통 진료비보다 훨씬
비싸다.)

* 거리 소음 + 걷는 소리.......

남 : 진짜 괜찮아?
여 : 응. 나 학교 다닐 때도, 시험 보기 전날이면, 배 아프고 그랬다?
그런데 병원만 딱 오면, 배가 안 아픈 거야. 그게 다 신경성이라
그런가봐.
남 : 그러게, 사람 놀래키고 그래~~ 아프면 바로바로 병원 가고 그래.
여 : 어머~ 당신 놀랬어? 어유~ 그래도 홀아비 되긴 싫었나봐?
남 : 싫긴 뭐가 싫으냐? 홀아비 되면, 젊은 마누라도 새로 들이고 좋지.
여 : 내가 말을 말아야지...

* 걷는 소리.......

(참 오래전부터 내 곁에서 이렇게 함께 걸어왔던 아내.
그녀와 아주 오랜만에... 함께 길을 걸어본다.)

(다음날 병원에 다녀온 아내는, 회사 앞에서 내게 전화를 걸었다.)

여 : 난데, 우리 점심 먹을까?
남 : 바쁜데...
여 : 회사 앞까지 왔는데?
남 : 그래. 알았다. 병원은 갔다 왔어?
여 : 어. 신경성 위염이래. 남편이 속썩이냐고 물어보더라.
의사선생님이.......
남 : 나만큼 잘하는 남편 있으면 나와 보라 그래. 뭐 먹고 싶어?
여 : 죽 먹자. 요즘 좋은 죽집 많다며? 그런 데 가서 우아하게 먹어보고
싶다.

* 죽 떠먹는 소리.......

남 : 여기 괜찮지?
여 : 횟집에서 죽도 파네?
남 : 어. 우리 회식할 때 자주 오는 데야.
여 : 그런데 너무 비싸다. 죽 한 그릇에 만 오천 원씩이나 해?
태어나서 이렇게 비싼 죽은 처음 먹어보네.

* 바닥까지 긁어먹는 소리.......

(갑자기 열심히 죽을 먹는 아내가 안쓰러워 보였다. 만 오천 원짜리
죽 한 그릇이 아까워, 그릇 밑바닥까지 싹싹 긁어먹는 아내... 난 몇
십만 원짜리 술도 아무렇지 않게 먹는데... 내 아내는 태어나 이렇게
비싼 죽을 처음 먹어 본단다. 그동안 내가 뭘 하고 살았나 생각이
들었다.)



여 : 여보, 할 말이 있는데.
남 : 어, 얘기해.
여 : 추석 때 있잖아. 친정부터 가면 안 될까?
남 : 왜 또 그래~ 어머니 성격 알면서~
여 : 그러게. 30년 넘게 어머니 성격 아니까, 명절 때마다 당신 집부터
갔잖아?
남 : 명절 때 시댁부터 가는 건, 당연한 거야.
여 : 당신 집은 오남매야. 우리 집은 오빠랑 나밖에 없잖아.
엄마가 얼마나 외로워하시는데.......
남 : 추석 끝나고 가면 되잖아.
여 : 어머니도, 당신도 웃겨. 당신!
남 : 여보.... 왜 이래. 새삼스럽게.
여 : 그럼 이렇게 해. 추석 때 당신은 당신 집 가. 난 우리 집 갈 거야.
남 : 어머니가 가만 계시겠어?
여 : 안계시면 어떡 할 건데? 나도 할 만큼 했어. 맘대로 하라 그래.
남 : 당신, 오늘 좀 이상하다.
여 : 30년 동안, 그만큼 이기적으로 부려먹었으면 됐잖아.
내가 이정도 얘기하는 것도, 그렇게 이상해?

(큰소리친 대로, 아내는 추석이 되자, 짐을 몽땅 싸서 친정으로
가 버렸다. 나 혼자 고향집으로 내려가자, 어머니는 노발대발하시며,
세상천지에 며느리가 이러는 법은 없다고 난리를 치셨다. 지난 30년
동안 한번도 없었던 일이니, 이번만큼은 노엽게 생각하지 마시라고
말씀드렸지만, 오히려 마누라 편든다며, 내게도 잔소리를 늘어놓셨
다. 여동생은 여동생대로 제 새언니 흉을 보면서, 무슨 며느리가 그렇
게 제멋대로냐고 했다. 자기는 임신을 핑계로, 추석 전부터 우리집에
와서 쉬고 있으면서, 제 새언니가 친정에 간 건, 그렇게 못마땅한가
보다. 아내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 보니, 우리 가족이지만, 하는 말마
다 행동마다 참 얄미울 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혼하고 처음. 아내가 없는 명절을 보냈다.)

* 문 탕 열고 들어오는 + 클래식 소리.......

(집으로 돌아오자, 아내가 태연히 앉아서, 책을 보고 있었다.
여유롭게 클래식 음악까지 틀어놓고 말이다.)

남 : 당신, 지금 뭐 하는 거야?

* 음악 탁 끄는(쇼팽의 이별곡) 소리.......

여 : 음악 들으면서 책 보잖아. 왜?
남 : 제정신이야? 어머니 얼마나 화나셨는지 알면서,
명절 내내 전화 한 통화 안해?
여 : 어머니 목소리 별로 듣고 싶지 않았어. 간만에 좋은 기분,
망칠 필요 없잖아.
남 : 뭐??
여 : 가끔 뉴스에서 주부우울증으로 투신자살하는 여자들 얘기 들으면,
생각했었어. 남은 가족들은 어쩌라고 저랬을까...
남 : 지금 그 얘기가 왜 나와?
여 : 그런데, 나 이제 이해가 돼. 그 여자들은 남은 가족들이 아무렇지도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죽음을 택했을 거야.
남 : 그게 말이 돼?
여 : 내가 지금 없어져도, 당신도 애들도 어머님도 사는데 아무 지장 없
을 거야. 처음엔 조금 슬프겠지만, 금방 잊을 거야!
남 : ..... 여보?!.....

여 : (울며) 여보. 나 명절 때 친정에 가 있었던 거 아니야.
나, 병원에 입원해서 정밀 검사 받았어. 당신이 한번 전화만 해봤어
도 금방 알 수 있었을 거야. 당신이 그렇게 해주길 바랬어. 그래서,
내가 어디로 갔을까 놀라서 나를 찾아주길 바랬어. 침대에 혼자 누워
서 당신이 헐레벌떡 나타나 주면, 뭐라고 하면서 안길까... 혼자 상상
했었어. 그런데, 당신 끝내 안 나타나더라. 끝내 나 혼자 두더라.



(아내의 병은 가벼운 위염이 아니었던 것이다. 다음날 나와 아내는
함께 병원으로 향했다. 검사 결과에 대해 얘기를 듣기 위해서였다.
가는 내내 아내는 무거운 얼굴로 아무 말이 없었다.)

남 : 죽으러 가냐?
여 : 무슨 말을 그렇게 해?
남 : 요즘 위암? 아무것도 아니야. 요즘은 다 고쳐.
여 : 그래. 누가 뭐래.
남 : 악성도 다 고친다구. 내 친구 차교수 알지? 그 친구도 위암3기였
는데, 멀쩡하잖아. 요샌 아무 것도 아니야 그런 거! 진짜 아무 것도
아니라구!!!

(누구를 위로하기 위해 큰소리를 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아내를 안
심시키기 위한 건지, 나 자신을 안심시키기 위한 건지... 큰 소리 치
면서도 운전대 잡은 손에 땀이 흥건하게 고였다. 그러면서도 난 끝까
지 중얼거렸다.)

남 : 암? 쳇! 그런 거 아무 것도 아니야. 아무 것도...

(난 의사의 입을 멍하게 바라보고 있다. 저 사람이 지금 뭐라고 말하
고 있는 건가, 내 아내가 위암이라고? 전이될 대로 전이가 돼서, 더
이상 손을 쓸 수가 없다고...수술도 하기 어려운 상태니 마음의 준비
를 하시라고.... 가고 싶은 데 있다고 하면 데려가 주고, 먹고 싶은
거 있다고 하면 먹게 해 주라고.... 삼 개월 정도 시간이 있다고....
지금, 그렇게 말하고 있는가. 자기가 뭔데. 자기가 하나님인가.
자기가 남은 시간을 어떻게 아나. 내 아내가 내 곁에서 3개월을
살지, 3년을 살지, 30년을 살지 어떻게 알고....
저렇게 함부로 말을 한단 말인가. 따지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멱살이라도 잡고, 입 함부로 놀리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난 아무 것도 하지 못한 채, 그저 의사의 입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아내와 함께 병원을 나왔다. 유난히 가을 햇살이 눈부시게 맑았다.)

여 : ...... 여보!!......

(아내의 음성이 조용히 귓가에 내려 앉는다. 아내가 살포시 팔짱을
끼고, 내 어깨에 고개를 기댄다. 난 아내의 얼굴을 바라볼 수가 없
다. 지금 그녀를 보면, 절망으로 가득한 내 얼굴을 보여주게 될 것이
다. 그러긴 싫었다.)

여 : 여보....
남 : (무뚝뚝) 왜!
여 : ...........미안해.
남 : 미안하긴 뭐가 미안해. 내가 아까 말했지? 차교수도 처음에 병원
갔을 때, 똑같이 말했대. 차교수도 3개월, 아니 2개월 산다 그랬대!
그런데 지금 봐. 멀쩡하게 다니잖아. 그 친구가 나보다 힘도 더 세고
더 튼튼해! 의사 자식들이 하는 말, 저거... 다 뻥이야!
사람 겁주고... 어? 겁줘서 돈 뜯어낼라고 하는 소리야!
믿지 마, 저런 말!!

(나는 바보다. 끝까지 아내 앞에선 강한 모습만 보여주고 싶어서 큰
소리 치고 있다. 하지만 난 지금 너무 무섭다. 아내가 잡고 있는 내
손이 덜덜 떨릴 정도로 너무너무 겁나고 무섭다. 아내의 따뜻한 손
이 내손을 꼭, 더 꼭 잡아준다.)



* 엘리베이터 띵 올라가는 소리.......

(집까지 오는 동안 우리는 서로 한마디도 할 수가 없었다. 주위에서
누가 암에 걸렸다, 누구 부인이 죽었다.. 이런 얘기 많이 듣는 나이
가 됐지만, 그런 일이 내게 닥칠 거라고는 한번도 생각하지 못했다.
엘리베이터에 탄 아내를 보며, 앞으로 나 혼자 이 엘리베이터를 타
고 집에 돌아가야 한다면 어떨까를 생각했다. 문을 열었을 때, 펑퍼
짐한 바지를 입은 아내가 없다면, 방걸레질을 하는 아내가 없다면,
양푼에 밥을 비벼먹는 아내가 없다면, 술 좀 그만마시라고 잔소리해
주는 아내가 없다면, 나는 어떡해야 할까를 생각했다. 처음으로 우
리 집으로 장만한 이 아파트에는 아내의 손길이 고스란히 묻어 있는
곳이다.)

* 대문 열고 들어오는 소리.......

여 : 여보, 우리 이사갈까?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아내가 말했다.)

여 : 여기 우리 둘이 살기에는 너무 넓잖아?
남 : 됐어. 난 여기가 좋아.
여 : 아니야. 너무 낡았어. 이 집 팔고 조금 작은 평수, 새집으로 이사
가면 좋잖아.
남 : 됐다고 하잖아.
여 : 이 집이 당신 괴롭힐 거라고 생각하니까, 이 집...
정말 꼴도 보기 싫다.

(아내는 함께 아이들을 보러 가자고 했다. 아이들에게는 아무 말도
말아달라는 부탁과 함께. 서울에서 공부하고 있는 아이들은, 갑자기
들이닥친 부모가 그리 반갑지만은 않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아내는
살갑지도 않은 아이들의 손을 잡고, 공부에 관해, 건강에 관해, 백번
도 넘게 해온 소리들을 해대고 있다. 아이들의 표정에 짜증이 가득한
대도, 아내는 그런 아이들의 얼굴을 사랑스럽게 바라보고만 있다.
난 더 이상 그 얼굴을 보고 있을 수 없어서 밖으로 나왔다.)

* 담배 불 켜는 소리.......

여 : 또... 또 담배....
남 : 또... 잔소리.... 그러니까 애들이 싫어하지.
여 : 여보, 집에 내려가기 전에.. 어디 코스모스 많이 펴 있는 데
들렀다 갈까?
남 : 코스모스?
여 : 그냥... 그러고 싶네. 꽃 많이 펴 있는 데 가서, 꽃도 보고,
당신이랑 걷기도 하고....

(아내는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 이런 걸 해보고 싶었나보다.
비싼 걸 먹고, 비싼 걸 입어보는 대신, 그냥 아이들 얼굴을 보고,
꽃이 피어 있는 길을 나와 함께 걷고.)

여 : 당신, 바쁘면 그냥 가고...
남 : 아니야. 가자.

* 바람부는 + 갈대숲 일렁이는 소리.......

(코스모스가 들판 가득 피어있는 곳으로 왔다. 아내에게 조금
두꺼운 스웨터를 입히고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여 : 여보, 나 당신한테 할 말 있어.
남 : 뭔데?
여 : 우리 적금, 올 말에 타는 거 말고, 또 있어.
남 : 뭐?
여 : 내년 4월에 탈 거야. 2천만원 짜린데, 3년 부은 거야. 통장,
싱크대 두 번째 서랍 안에 있어. 그리구... 나 생명보험도 들었거든.
재작년에 친구가 하도 들라고 해서 들었는데, 잘했지 뭐.
그거 꼭 확인해 보고.......
남 : 당신 정말...
여 : 그리고 부탁 하나만 할게. 올해 적금 타면, 우리 엄마 한 이백만원
만 드려. 엄마 이가 안좋으신데, 틀니 하셔야 되거든.
당신도 알다시피, 우리 오빠가 능력이 안되잖아. 부탁해.

(난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고 말았다. 아내가 당황스러워하는 걸
알면서도, 소리내어... 엉엉..... 눈물을 흘리며 울고 말았다.
이런 아내를 떠나 보내고... 어떻게 살아갈까....)



* 문 여는 소리.......

(다시 집으로 돌아왔을 때, 난 깜짝 놀랐다. 집안에는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침대와 소파 식탁 정도만이, 모든 것이 빠져나간
자리에, 오도카니 남아 있었다.)

남 :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여 : 내가.. 오빠한테 부탁해서 이사 좀 해달라 그랬어.
남 : 뭐?
여 : 오빠가 동네 가르쳐 줄 거야. 여보, 나 떠나고 나면 거기 가서 살아.
남 : 당신 정말 왜 이래!! 그럴 거면, 당신이랑 같이 가.
여 : 아니야. 난 새집 안들어 갈래. 거기선 당신이 새 출발해야지.
남 : 당신은, 내가 정말 당신 잊길 바래?
여 : ......솔직히 말하면 아닌데... 그렇다고, 당신이 나 떠나고 나서,
청승 떨면서 사는 건, 더 싫어.

(텅 비어 있는 집의 한 구석에, 우리 부부가 앉아 있다. 베란다 사이
로 스며 들어오는 햇살을 맞으며. 아내가 떠나고 난 내 삶은, 지금
이 빈집처럼 스산할 거라는 걸 안다.)

* 풀벌레 소리.......

(침대에 나란히 누웠다. 아내가 내 손을 잡는다. 요즘 들어 아내는
내 손을 잡는 걸 좋아한다.)

여 : 여보, 30년 전에 당신이 프로포즈 하면서 했던 말 생각나?
남 : 내가 뭐라 그랬는데....
여 : 사랑한다 어쩐다 그런 말, 닭살 맞아서 질색이라 그랬잖아?
남 : 그랬나..
여 : 그 전에도 그 후로도, 당신이 나보고 사랑한다 그런 적 한 번도
없는데, 그거 알지?
남 : 그랬나...
여 : 어쩔 땐 그런 소리 듣고 싶기도 하더라.
남 : ..... 자!.....

(아내는 금방 잠이 들었다. 그런 아내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나도 깜박 잠이 들었다. 일어나니 커튼이 뜯어진 창문으로, 아침햇살
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남 : 여보! 우리 오늘 장모님 뵈러 갈까?
여 : .................
남 : 여보. 장모님 틀니... 연말까지 미룰 거 없이, 오늘 가서 해드리자.
여 : ...............

(좋아하며 일어나야 할 아내가 꿈쩍도 하지 않는다.
난 떨리는 손으로 아내를 흔들어 본다.)

남 : 여보.... 장모님이 나 가면, 좋아하실텐데.... 여보, 안 일어나면,
안간다! 여보?!..... 여보!?......


(이제 아내는 웃지도, 기뻐하지도, 잔소리 하지도 않을 것이다.
난 아내 위로 무너지며 속삭였다. 사랑한다고....
어젯밤.... 이 얘기를 해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아!!!! 그렇게, 난, 아내를 보내 버렸다.)

<김기덕이 진행하는 모 방송프로그램에 나왔던 실제 이야기입니다.>



- 출처: 보배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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