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이런 부류의 글을 카테고리까지 만들어 놓고 모으는 이유는, 삶에 부대껴 헐떡이다 지쳐 가끔 뒤돌아 보면 너무 삭막하게 사는 저 자신이 문득 불쌍하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또한, 가슴이 찡한 감동을 주는 글을 읽고 나면 제 나름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캡처를 하지 못해 놓친 글이 많습니다만 앞으로는 저작권에 문제가 없는 한 제 블로그에도 그러한 글들이 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두고 싶습니다.
참, 아시죠? 이런 글 읽을 때는 컴퓨터 앞의 마우스를 좌클릭, 우클릭하던 버릇은 잠시 억제하시고 차분하게 보셔야 한다는 것을요. ^^
신랑이 늦둥이라 저와 나이 차가 50년 넘게 나시는 어머님...
저 시집오고 5년만에 치매에 걸리셔서
저 혼자 4년간 똥오줌 받아내고, 잘 씻지도 못하고,
딸내미 얼굴도 못 보고, 매일 환자식 먹고,
간이침대에 쪼그려 잠들고,
4년간 남편 품에 단 한 번도 잠들지 못했고,
힘이 없으셔서 변을 못 누실 땐
제 손가락으로 파내는 일도
거의 매일이었지만
안 힘들다고, 평생 이 짓 해도 좋으니 살아만 계시라고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정신이
멀쩡하셨던 그 5년간 베풀어주신 사랑 덕분이었습니다.
제 나이 33살 먹도록 그렇게 선하고 지혜롭고 어진 이를
본적이
없습니다.
알콜중독으로 정신치료를 받고 계시는 아버지...
그런 아버지를 견디다 못해 제가 10살 때 집 나가서 소식 없는
엄마...
상습절도로 경찰서 들락날락하던 오빠...
그밑에서 매일 맞고, 울며 자란 저를 무슨 공주님인 줄 착각하는 신랑과
신랑에게 모든 이야기를 듣고는 눈물 글썽이며
한시라도 빨리 데려오고 싶다고 2천만원짜리 통장을
내어주시며,
어디 나라에서는 남의집 귀한 딸 데리고 올 때 소 팔고 집 팔아
지참금 주고 데려 온다는데, 부족하지만
받으라고...
그돈으로 하고 싶은 혼수, 사고 싶은 거 사서 시집오라
하셨던 어머님...
부모 정 모르고 큰
저는 그런 어머님께 반해,
신랑이 독립해 살고있던 아파트 일부러 처분하고
어머님댁 들어가서 셋이 살게
되었습니다.
신랑 10살도 되기 전에 과부 되어, 자식 다섯을 키우시면서도
평생을 자식들에게조차 언성 한 번 높이신 적이
없다는 어머님...
50 넘은 아주버님께서 평생 어머니 화내시는 걸 본적이
없다 하시네요.
바쁜 명절날
돕진 못할망정 튀김 위에 설탕 병을 깨트려
튀김도 다 망치고 병도 깬 저에게 1초도 망설임 없이
"아무 소리 말고
있거라" 하시고는
늙으면 죽어야 한다며 당신이 손에 힘이 없어 놓쳤다고
하시던 어머님...
단 거 몸에
안 좋다고 초콜렛 쩝쩝 먹고있는 제 등짝을
때리시면서도 나갔다 들어오실 땐 군것질거리 꼭 사 들고
"공주야~ 엄마
왔다~" 하시던 어머님..
어머님과 신랑과 저. 셋이 삼겹살에 소주 마시다
셋다 술이 과했는지 안 하던 속마음 얘기하다가,
자라온 서러움이 너무 많았던 저는
시어머니 앞에서 꺼이꺼이 울며 술주정을 했는데,
그런 황당한
며느리를 혼내긴 커녕
제 손을 잡으며, 저보다 더 서럽게 우시며,
얼마나 서러웠노, 얼마나
무서웠노..
처음부터 니가 내 딸로 태어났음 오죽 좋았겠나,
내가 더 잘해줄 테니 이제 잊어라..잊어라...하시던
어머님...
명절이나 손님 맞을 때 상 차린 거 치우려면
"아직 다 안 먹었다 방에 가 있어라"하시곤
소리 안 나게
살금살금 그릇 치우고 설거지 하시려다 저에게 들켜
서로 니가 왜 하니, 어머님이 왜 하세요 실랑이 하게
됐었죠...
제가 무슨 그리 귀한 몸이라고..
일 시키기 그저 아까우셔서 벌벌 떠시던 어머님.
치매에
걸려 본인 이름도 나이도 모르시면서도
험한 말씨 한번 안 쓰시고
그저 곱고 귀여운 어린 아이가 되신
어머님...
어느날 저에게 " 아이고 이쁘네~ 뉘 집 딸이고~~" 하시더이다.
그래서 저 웃으면서
"나는
정순X여사님(시어머님 함자십니다) 딸이지요~
할머니는 딸 있어요~?"했더니 "있지~~
서미X(제이름)이 우리 막내딸~
위로 아들 둘이랑 딸 서이도 있다~"
그때서야 펑펑 울며 깨달았습니다.
이분 마음 속엔 제가, 딸 같은 며느리가 아니라
막내 시누 다음으로 또 하나 낳은 딸이었다는걸...
저에게...
"니가 내 제일 아픈 손가락이다." 하시던
말씀이 진짜였다는 걸...
정신 있으실 때, 어머님께 저는 항상 감사하고 사랑하고
잘하려 노력은 했지만 제가 정말 이분을
진짜 엄마로
여기고 대했는지...,
왜 더 잘하지 못했는지, 왜 사랑하고 고맙단 말을 매일 매일
해 드리진
못했는지...
형편 어렵고 애가 셋이라 병원에 얼굴도 안 비치던 형님..
형님이 돌보신다 해도 사양하고 제가 했어야 당연한
일인데,
왜 엄한 형님을 미워했는지...
말한마디 행동 하나하나가 사무치고 후회되어
혀를 깨물고 싶은
심정이었답니다.
밤 11시쯤,, 소변보셨나 확인하려고 이불 속에 손 넣는데
갑자기 제 손에 만 원짜리 한 장을 쥐여
주시더군요...
"이게 뭐에요?" 했더니 소근소근 귓속말로
"아침에~ 옆에 할매 가고 침대 밑에
있드라~
아무도 몰래 니 맛있는 거 사 묵어래이~" 하시는데 생각해보니
점심 때쯤 큰 아주버님도 왔다 가셨고, 첫째, 둘째
시누도
다녀갔고.. 남편도 퇴근해서 "할머니~ 잘 있으셨어요~?"
(자식들 몰라보셔서 언젠가부터 그리 부릅니다.)
인사하고
집에 들어갔는데...
아침 7시에 퇴원한 할머니가 떨어트린 돈을 주우시곤
당신 자식들에겐
안 주시고 갖고 계시다가 저에게 주신 거였어요.
그리곤 그날 새벽 화장실 다녀왔다 느낌이 이상해
어머님 코에 손을 대보니
돌아가셨더군요...
장례 치르는 동안 제일 바쁘게 움직여야 할 제가
울다 울다 졸도를 세 번 하고 누워 있느라 어머님
가시는 길에도
게으름을 피웠네요...
어머님을 닮아 시집살이가 뭔지 구경도 안 시킨 시아주버님과
시누이
셋. 그리고 남편과 저...
서로 부둥켜안고 서로 위로하며, 어머님 안 슬퍼하시게
우리 우애 좋게 잘살자 약속하며 그렇게
어머님 보내드렸어요..
오늘이 꼭 시어머님 가신지 150일째입니다..
어머님께서 매일 저 좋아하는 초콜렛,사탕을
사 들고 오시던
까만 비닐봉지.
주변에 널리고 널린 까만 비닐봉지만 보면 눈물이 납니다..
어머님이 주신
꼬깃꼬깃한 만 원짜리를 배게 밑에 넣어두고..
매일 어머님 꿈에 나오시면
사랑한다고... 감사하다고 말해 드리려 준비하며
잠듭니다.
다시 태어나면 처음부터 어머님 딸로 태어나길 바라는 건
너무 큰 욕심이겠죠...
부디 저희
어머님 좋은 곳으로 가시길..
다음 생에는 평생 고생 안 하고 평생 남편 사랑 듬뿍 받으며
살으시길 기도해 주세요.
- 출처: 미상
출처가 어디인지 아시는 분은 알려 주시기를 부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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