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제 주변이 뒤숭숭하다 보니 실수도 많고, 놓치는 일도 많군요. 저희 부부는 온국민이 한일 월드컵 신나게 응원하던 해 2002년 하고도 11월 10일 결혼했습니다. 올해로 벌써 7년차군요.

연애할 당시 거의 반협박조로 여자 나이 서른 넘어가면 지나가던 개도 쳐다보지 않는다는 둥, 일단 나이가 있는만큼 정식으로 사귄다는 걸 양가 어른들께 먼저 아뢰고 난 뒤 만나자고 살살 꼬드겨서 얼렁뚱땅 장인, 장모께 인사하러 갔었지요. 먼저 어른들께 잘보여 눈도장 찍어두면 둘이서만 밀고 당기기 하는 것보다는 저에게 유리할 것이라는 계산에서였는데 그 계산이 잘 맞아 떨어졌습니다. 저희 장인 어른이 또 성격이 불같은 면이 있으십니다. 크게 모자람이 없고, 이치에 맞으면 매사에 질질 끄는 걸 싫어하시는 편이십니다. 그 덕분에 그해 2002년이 가기 전에 결혼에 골인할 수 있었답니다.


7주년 결혼기념일


오늘이 11월 11일. 그렇습니다. 11월 10일이 지났지요. 어제 결혼기념일 챙겼냐고요? 사전에 기억을 하고 있어야 뭘 챙기든 말든 하지요. -_-;

오늘 오후 근무 중에 문자가 한 통 오더이다.

뭐 잊은 거 없어?

짧고 강렬하지 않습니까? -_-;
사실 11월 10일 생각은 하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제 양력 생일이 11월 10일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생각해도 이해가 안 됩니다. '내 양력 생일 = 결혼기념일'이니까 절대 잊어먹지 않을 거라고 말하기도 했었던 것까지 다 기억이 나더군요. 저는 11월 23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오늘 일로 마눌님께 깨지고 나서 생각해 보니 23일은 저희 큰아들 녀석 생일입니다.

Gentleman's Birthday Cake
Gentleman's Birthday Cake by Cake Girl by Hyeyoung Kim 저작자 표시변경 금지

곰곰이 따져본 결과, 최근 저희 집을 한바탕 휩쓸고 간 신종 플루 여파도 있었고, 또 11월은 저희 집 기준으로 정말 기념일이 많습니다. 제 생일, 장모님 생신, 큰아들 생일, 동생 생일, 거기다 결혼기념일까지... 지출이 많은 건 둘째 치고, 달력에 표시해 두지 않으면 정말 헷갈리기도 하거니와 그냥 넘어가는 경우도 생깁니다.

저희 부부는 결혼기념일에는 꼭 여행을 다녀오자고 다짐을 했었습니다. 손 꼭 잡고 함께 여행을 가서 결혼한 걸 기념도 하면서 좋은 곳 구경도 하고 겸사겸사 그렇게 하자고 했었지요. 그런데 작년에는 저희 작은아들이 태어난 지 60여일 밖에 되지 않아서 건너 뛰었고, 올해는 이렇게 해서 또 못 가게 됐네요. 신종 플루 때문이라고 핑계를 대기는 하지만 미안하기도 하고, 아쉽습니다.
사실 저희 아내가 이런 기념일을 그냥 넘어갈 사람이 아닌데 오늘에서야 이런 걸 보면 경황이 없어 자기도 분명 놓친 게 틀림없습니다. 어제는 가만 있다가 오늘도 오후 늦게야 왜 문자를 보냈느냐고 하니 어떻게 하는 지 지켜본 거랍니다.

아무튼 버스는 떠났지만, 그래도 그냥 넘어가면 또 며칠 동안 한랭전선이 왔다리 갔다리 할 것이 틀림없을 것이므로 부랴부랴 저녁 외식하는 것으로 입막음했네요. 대충 그 정도로 넘어가는 걸 봐서는 자기도 잊어버린 게 틀림없어요. ^^ 자식이 뭔지 신종 플루 때문에 본가에 맡겨 둔 작은아들에게 온정신이 가 있다보니 이런 일도 생기는군요.

DSC_0063
DSC_0063 by ireneclemance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제대로 결혼기념일을 챙겨주지 못한 미안함을 이 자리를 빌어 아내에게 용서를 구합니다. ^^


  * 이 포스트는 blogkorea [블코채널 : 이런 저런, 라이프 스토리!] 에 링크 되어있습니다.   

그동안 앞선 포스트를 통하여 간단히 개인적인 사정으로 근래 포스트 작성은 물론이고 블로그 관리조차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고 밝힌 적이 있습니다. 그 개인적인 사정이라는 다름 아닌 신종 플루입니다. 10월 말경에 시작하여 지금까지도 저희 집은 신종 플루로 인하여 집안 분위기가 뒤숭숭하고, 가족 구성원 한 명이 다른 곳으로 가 있는 등 정상적인 가정 환경을 유지할 수 없는 처지에 있습니다.

워낙 많은 출처로부터 신종 플루와 관련한 소식이 연일 쏟아져 나오고 있기 때문에 이제는 그 이름 신종 플루가 익숙하기까지 하실 겁니다. 경각심을 가지고 평소 건강 관리에 조심해야 하지만, 반대로 본인이나 주변인들 중에 신종 플루에 감염된 사람이 없을 경우는 오히려 소홀해질 가능성도 있습니다. 하지만, 신종 플루는 바로 우리들 코 앞까지 와 있는 상태이며, 호시탐탐 우리의 호흡기를 통해 인체 내로 파고들 기회만 엿보고 있다는 게 현실이라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타미플루

아시죠? 요즘 유명세를 타고 있는 타미플루입니다.



신종플루엔자


우선 간단하게 저희 가족이 최근 신종 플루와 엮인 과정을 기술하겠습니다.


☞ 10월 24일 (토)
울산을 출발하여 부산 본가 도착.
여동생의 큰딸, 작은딸과 3~4시간 접촉.
여동생은 애들 데리고 집으로 귀가.

☞ 10월 25일 (일)
큰아들 가벼운 기침.
그러나 이미 감기로 치료 중이어서 크게 신경쓰지 않음.
울산 복귀.

☞ 10월 26일 (월)
저녁 6시경, 여동생 큰딸 신종 플루 감염 사실 전화 통보.
부산 백병원 응급실에서 진료 및 치료.
여동생 작은딸은 본가로 격리 조치.

☞ 10월 27일 (화)
큰아들 감기 증상 심해짐.
기침과 함께 발열 증상.
오전에 동네 병원에서 가검사. (양성 판정)
타미플루 처방.

☞ 10월 28일 (수)
퇴근 후 작은아들 부산 본가로 격리 조치.
본인 감기, 몸살 증상.
기침, 오한.
열은 없음.

☞ 10월 29일 (목)
오전에 약국에서 일반 목감기약 처방.
기침으로 인한 목 따가움 증상 심해짐.
약이 효과가 있는 듯함.
여전히 열은 없음.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많이 남.

☞ 10월 30일 (금)
오전 기상 시 컨디션 양호.
출근 결정.
업무 중 병세가 다시 악화되는 걸 느낌.
정상 퇴근.

☞ 10월 31일 (토)
충분한 수면 후 기상.
컨디션 여전히 안 좋음.
동네 병원 방문.
기침, 인후통, 오한, 두통. 발열 증상까지 추가됨.
타미플루와 감기, 몸살약 처방.

☞ 11월 1일 (일)
타미플루와 처방 받은 감기약 동시 복용 후 눈에 띄게 증세가 호전됨.
여전히 두통 증세. 그와 함께 무력감.
큰아들, 가끔 기침하는 것 외에는 특별한 증상 없음.

☞ 11월 2일 (월)
큰아들 다른 병원에서 X-ray 검사.
기관지염 판정.
아내, 오후부터 몸 상태가 급격히 안 좋아지기 시작.
발열, 기침, 오한 증상.
우선 급한대로 본인이 처방받은 타미플루 1정과 감기약 1회분 복용.

☞ 11월 3일 (화)
아내, 약 복용 후 새벽에 몸 상태 잠시 호전.
시간이 갈수록 상태 악화.
특히, 두통과 요통이 심함.
오전에 동네 병원 방문.
아내, 타미플루 처방.
본인, 목소리가 잠긴 것 외에는 상태 아주 좋음.

☞ 11월 4일 (수)
아내, 아침 상태 호전.
그러나 본인이 느꼈던 것만큼 확연히 몸 상태가 좋아지지는 않음.
아내, 저녁 몸 상태 점점 호전.

☞ 11월 5일 (목)
아침 아내의 증세 다시 악화.
아내, 두통과 함께 무력감.
퇴근 후 아내 몸 상태가 여전히 좋지 못함.
동네 병원 방문.
합병증 증세는 없음.
조금 괜찮다고 수요일 집안일 한 것이 원인.

이상이 어제까지의 저희집 돌아가는 사정입니다. ㅠㅠ


큰아들은 가검사 후 양성 판정이 나오고, 접족했던 고종사촌 누나가 신종 플루로 판정났다고 하니까 바로 타미플루를 처방해 주더군요. 저같은 경우는 처음 감기 증세가 나타났을 때 약국 가서 일반 감기약을 직접 사서 복용했습니다. 이 대목이 어머니나 아내는 미련한 행동이라는 겁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맞습니다. 정황상 신종 플루일 확률이 높지만, 이런 저런 이유로 병원가는 걸 대단히 싫어합니다. -_-; 그리고 보니 저희 가족 중에는 확진 판정을 받은 사람은 한 명도 없군요.

제가 동네 병원 갔을 때는 검사도 하지 않고, 저에게 선택권을 주더군요. "가검사 받을 것인가? 아니면 바로 타미플루 처방을 원하나?" 아무래도 동네 병원이다 보니 저희 가족 이력을 꿰뚫고 있어서 그렇겠지요. 그래서 저는 바로 타미플루 처방 받는 것으로 택했습니다. 저희 아내는 말할 것도 없고요.

아내는 이러한 일련의 과정이 진행되는 와중에서도 정말 멀쩡했습니다. 큰아들과 신랑을 동시에 챙기느라 동분서주하며 뛰어다녔습니다. 그런 아내가 한편으로는 장하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고맙기도 해서 '우리는 이제 괜찮은 것 같으니 걱정하지 마라. 하지만, 당신은 정말 조심해야 한다.'고 격려를 하기도 했는데, 오전까지 괜찮던 사람이 순식간에 나빠지더군요. 그리고는 제일 심하게 앓고 있습니다. 견뎌내기는 할 테지요.
사실 이 자리에서 밝히는 거지만 11월 2일 큰아들 X-ray 찍던 날, 아내가 저도 같이 찍자고 하더군요. 병원 가는 걸 죽어라 싫어하고, 몸 상태도 별로 좋지 않다 보니 저는 일언지하에 거절했습니다. 이것 때문에 조금 실갱이가 있었습니다. 그 와중에 아내 마음에 생채기를 내며 좀 서운함을 느끼게 만들었습니다. 이 때문에 멀쩡하던 사람이 오후에 갑자기 안 좋아지기 시작한 게 저 때문은 아닌가 하는 생각에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그렇지만 지랄맞은 갱상도 머슴아는 그런 일로 미안하다는 말은 절대로, 때리지기도 못 한다 아입니까...;;;

보시는 바와 같이 이번 일 때문에 작은아들과 일주일 넘게 떨어져 있습니다. 막 돌을 지나 한창 재롱 피우고, 퇴근하고 집에만 가면 쪼르르 와서는 바지춤 잡고 안아달라고 매달리던 녀석인데 많이 보고 싶네요. 제가 이런데 아내는 오죽하겠습니까? 본가에 맡기고 나올 때 영원히 헤어지는 것처럼 눈물까지 보였던 사람인데 말입니다. 이번 주말에 데리러 갈 수 있지 않을까 내심 기대하고 있었는데 돌아가는 상황으로 봐서는 힘들 것 같기도 합니다. ㅠㅠ

타미플루
그런데 이번 일을 겪으면서 정말 우리나라 위기 상황에 대처하는 걸 보면 20년 전이나,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발전이라고는 없는 것 같아 안타깝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하더군요. 연일 신문이나 방송에서는 신종 플루로 떠들어대고 있지만, 정부에서 한 일이라고는 질병관리본부에서 단계를 '경계'에서 '심각'으로 격상한 것 외에 뭐가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정부에서 이번 사태를 제대로 관리하고 있다는 느낌은 어디에서도 받을 수 없었습니다. 신종 플루 감염자가 대충이라도 얼마나 되는지 제대로 파악이나 하고 있는지 의심스럽습니다. 통계가 전적으로 병의원의 자료에 의존하고 있을 텐데 실제 현장에서 얼마나 정확한 보고가 올라가는지는 모르지만, 며칠 지켜본 바로는 체계적으로 처리되는 것은 없고 거의 대부분이 주먹구구식입니다. 만일 최악의 경우로 염려하고 있는 신종 플루 바이러스가 다른 독감 바이러스와 만나 변이가 되어 치사율이 높아진다면 어떻게 될까? 라고 생각하면 아찔합니다. 삽질이나 잘 하고, 민감한 정치 현안을 신종 플루를 이용하여 물타기나 하려고 하는 저들의 태도를 보면 정말 정말 부아가 치밀어 오릅니다. 무대책이 상대책이라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죠.


  * 이 포스트는 blogkorea [블코채널 : 이런 저런, 라이프 스토리!] 에 링크 되어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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