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노무현 대통령님을 직접 뵌 적이 있습니다. 이목구비를 구분할 수 있을 만큼 가까이서 뵌 것은 아니고 부산에서 국회의원 출마하실 때 강단에 서서 청중들에게 열변을 토하시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 당시 저는 공부를 열심히 한 것은 아니지만, 고등학생 신분이었기에 일부러 시간을 내서 연설을 들으러 갈 입장이 되지를 못했습니다. 아니 찾아갈 여건이 되었더라도 가지를 않았을 겁니다. 정치 자체에 무관심했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그 자리에 가게 된 것은 아버지 때문이었습니다. 아버지도 일부러 찾아간 것은 아니었고, 지나던 길에 마침 가까운 곳에서 연설이 행해지고 있다는 것을 아시고는 그리로 발걸음을 하신 것으로 기억합니다. 정치에 무관심했던 저였지만 그 당시에도 '노무현'이라는 정치인이 여타 기성 정치인들과는 사뭇 다른 점이 많다는 것은 여기저기 주워들어 알고 있었습니다. 너무 앞서 나갔다고 해야 하나요? 당시 그 젊은 정치가의 열변을 들으시면서 아버지가 하셨던 말씀이 아직도 기억납니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했는데 묻어갈 때는 묻어가야지 너무 튄다."

여러분 기억도 다르지 않을 겁니다. 어딜 가나 눈에 띄는 분이었습니다. 기성 정치와 기득권 수구세력과의 타협을 모르고 항상 불협화음을 쏟아냈으니 눈에 안 띠면 그게 더 이상하겠지요. 그러다가 전 국민의 뇌리에 '노무현'이라는 이름을 각인시키는 5공 청문회를 거칩니다. 소리치고, 호통치고, 그러다가 수틀리면 벌떡 일어나서 온 청문회장이 떠나가라 질타를 했습니다. 아마 5공 청문회 TV 방영할 때 카메라에 가장 많이, 가장 오랫동안 잡히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정치라는 것을 잘 알지 못하고, 지금도 여전히 모르지만 노무현 대통령님의 그 반골기질은 혈기왕성한 당시의 저에게 은근히 끌리는 매력을 발산하였습니다. 그 이후 3당 야합 규탄, 소신 있는 부산 지역구 출마를 비롯한 제 개인적인 기준으로 눈에 쏙쏙 들어오는 정치활동[각주:1]을 펼쳤습니다. 그래서 2002년 제16대 대통령 선거 당시 노무현 후보에게 한 표를 행사했습니다. 이것 때문에 참 여기저기서 욕도 많이 먹었습니다. "왜 노무현을 찍었느냐?", "경제를 살리려면 이회창을 찍어야지.", "나라 말아먹으려고 그러느냐?" 등 제가 행한 소신에 대해 왜 주위에서 그렇게 감 놔라, 배 놔라 하는지 도무지 이해불가의 상황이 벌어지더군요.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 임기 초기 시절 야심 차게, 획기적으로 밀고 나가는 국정운영을 보면서 제 나름대로 만족감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여기저기서 암초를 만나 애초 품었던 대의를 추진력으로 밀어붙이는 모습은 점점 보기 어려워졌습니다. 원인이 이 나라를 망국의 길로 끌고 가는 기존 기득권 세력들의 비열한 방해와 획책 때문이라는 것을 누가 말해주지 않아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원인이 대통령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힘없는 제가 결국 원망하게 되는 쪽은 노무현 대통령이었습니다. 기존 수구 꼴통 세력들에게는 무슨 기대를 하고 자시고 할 가치도 없고, 힘없는 서민과는 사는 세상 자체가 다른 부류들에게 무슨 희망을 품겠느냐는 은연 중 터득한 이 나라 대한민국에서 사는 법이라고 해야겠지요. 개인의 희망사항이었지만 다 갈아엎어 주실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개인적 바람이었지만 이 나라에서 사는 게 행복하다고 느끼게 해 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이 나라는 썩은 물에 뿌리를 내린 탐욕스러운 인간 같지 않은 무리가 대통령 혼자서는 상대하기에는 너무 벅찰 정도로 이미 회생불능의 상태로 전락해 있었나 봅니다.
대통령 노무현은 절망했겠지요. 정치, 경제, 언론, 종교를 비롯한 분야를 가리지 않고 대한민국 사회 전 분야를 장악하고 탐욕과 이기의 혓바닥을 날름거리고 있는 이 나라 기득세력을 보면서 비통에 잠겼겠지요. 더군다나 그 어려운 시기 힘을 보태주지는 못할망정 바닥을 기는 지지율과 탄핵을 하니 마니 하는 상황으로 그렇지 않아도 절박했을 대통령을 벼랑 끝 낭떠러지로 몰아갔습니다.

그만큼 임기 동안 도와주는 것 없이 괴롭혔다면, 퇴임 후 낙향하여 범부로 살기를 희망한 전직 대통령을 이 지경까지 몰고 가면 안 되는 거였습니다. 세상살이에 지쳐 현실과 너무 타협하며 지내다 보니 시종일관 방관자의 시선으로만 바라보다가 결국 상징이 쓰러지는 걸 목격합니다. 지금에 와서야 땅을 치고 후회를 합니다. 너무나 아둔하여 가시고 나서야 깨닫습니다. 그 자존심과 뜻 조금만 낮추고 그냥 묻어가시면 안 되었느냐고 묻고 싶지만, 그랬다면 인간 노무현이 아니겠지요.

당신은 우리의 영원한 대통령입니다.

노무현 대통령님, 저는 어찌 이리 우둔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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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물론 실망스러운 행보를 한 적이 없었던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제가 감히 잘한 일이니, 잘못한 일이니 평가할 능력도 되지 않을 뿐더러 정치에 '정'자도 모르는 놈 눈에 보이는 실망스러운 행보지만 보다 큰 시야로 보면 그게 다 의미있는 행보였겠지요.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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